■ 유통현장 ‘술렁’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안이 원안대로 확정되면서 농축산물 유통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아울러 김영란법 시행이 관련 업계에 어떤 식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를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농업계 염원 외면한 정부=농축산물은 법 적용에서 제외하거나 적용기준을 완화해주길 바랐던 농축산물 유통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올 추석경기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전개될 업계판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축소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법 시행 이전임에도 농축산물 소비가 크게 위축된 만큼 28일 본격적으로 법이 시행되면 농축산업계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의 한 중도매인은 “최근 5년 동안 올해만큼 과일 선물세트 판매가 힘들기는 처음인 것 같다”며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수년 전부터 꾸준히 거래했던 기업의 발주물량이 크게 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농업계는 특히 김영란법이 고품질 농축산물 소비를 위축시키고, 농축산물 판매가격 상승폭을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선물 기준 가액이 5만원으로 정해진 만큼 비교적 고가로 판매되는 친환경농산물이나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 농산물의 판매 위축은 물론 5만원 이하 맞춤형 저가 상품 판매확대에 따른 가격상승폭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유통업체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값을 낮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농산물 소포장 비율을 늘릴 것”이라며 “그럴 경우 포장재와 인건비가 상승하고 운송횟수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오른 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축산업계…김영란법 직격탄=축산업계도 침울한 분위기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그 피해가 이미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는 추석 명절을 겨냥해 ‘고육지책’으로 포장량을 줄여 단가를 낮추거나 상품 구성을 달리하며 중저가 한우 선물세트를 주력상품으로 내세웠지만 예년 같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영란법을 겨냥한 상품도 내놓았다. 경기 수원축협은 한우 부산물인 뼈만으로 구성한 4만9900원짜리 선물세트를 마련했다. 경남지역 한우 브랜드인 <한우지예>도 5만원 이하의 ‘사골 잡뼈’를 판매 중이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이 이미 시행됐다고 잘못 알고 아예 추석 선물을 주문하지 않거나 법 시행을 앞두고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5만원 이하의 저가 선물세트만을 찾으면서 한육우 시장은 된서리를 맞고 있다.
농협유통에 따르면 추석 앞둔 8월18일~9월4일까지 한우 선물세트 등 쇠고기 판매량은 220여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이상 줄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매년 매출액이 신장했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감소폭은 이보다 더 큰 셈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우는 명절을 겨냥한 유통구조에서 벗어나 국민 실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전략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외국산 축산물에 시장을 내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인삼·화훼업계=김영란법 시행의 최대 피해 품목으로 꼽히는 인삼·화훼업계는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권영민 농협홍삼 마케팅본부장은 “시행령 상한액 기준에 따라 5만원 이하의 저가 제품 구성을 늘릴 수밖에 없다” 며 “저가 제품은 인삼함유량이 10% 이하에 불과해 인삼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화훼 유통업계는 경조사용 소비의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해 타격이 더욱 클 것이란 전망이다. 화훼의 경우 시행령에서 경조사용 화환은 경조사비(10만원), 승진 축하용 난은 선물(5만원)에 해당한다. 화훼 유통업체인 프레시플라워 국영진 대표는 “화환은 부조금을 포함하면 10만원이 넘기 때문에 사실상 거래가 어렵다”며 “난도 저가의 품종은 5만원 정도이지만 선물용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이 시행되면 꽃 선물이 금기시되면서 화훼산업이 붕괴될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태억·성홍기·장재혁 기자 hgsung@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