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메주로부터 분리된 한국형 균주 ‘KACC 93210’의 배양 모습(왼쪽 위)과 현미경으로본 포자머리 . 오른쪽에 홍승범 농촌진흥청 농업미생물과 연구사.
◆전통된장 맛의 비밀을 풀다=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고유의 방식으로 장(된장·간장)을 만들어왔다. <삼국사기>에는 우리나라가 장 제조방법을 일본에 전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장류 제조법이 도입되고, 장류 생산에 뛰어든 대다수 기업들이 일본식 제조방법을 택하며 전통 장맛에 위기가 찾아왔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산업화된 일본식 장류 제조법이 전체 장류 생산의 60~80%를 차지해 전통 장류가 소멸 위기에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농진청이 주목한 것은 메주에 서식하는 우리 토종 곰팡이를 규명하는 일이었다. 홍승범 농진청 농업미생물과 연구사는 3~4년간 전국에서 323개의 메주를 수집하고 여기서 1479개의 균주를 확보했다. 이 중에는 신종 곰팡이 1종도 포함돼 있다. 홍 연구사는 그중 메주 생산에 중요하고 활용 가치가 높은 310개 균주를 선발해 농진청이 운영하는 국가 미생물은행에 등록해 영구보존했다. 미생물은행은 현재 약 2만개의 균주가 보관돼 있는데 이 중 7300여개가 곰팡이다.
홍 연구사는 이 연구를 토대로 전통 메주에 주로 서식하는 9종을 밝혀냈다. 일본 된장(미소)과 다른 우리 고유 맛의 비밀을 풀어낸 것. 일본 된장은 황국균(Aspergillus oryzae·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 한 종이지만 전통메주에는 황국균 외에도 털곰팡이( Mucor circinelloides·무코르 키르키넬로이드스) 등 10종이 공존하고 있었다. 일본 된장과 뚜렷이 구분되는 우리 전통 장의 맛은 이 때문에 발현되는 것이다.
◆실용화로 전통 장류에 활력 제고=홍 연구사는 전통 메주에서 단백질·전분 분해효소 생성이 우수한 곰팡이 76개 균주를 따로 선발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장류 생산에 적합한 10개 균주의 종균을 선발, 특허를 출원했다. 이 종균들은 장류의 구수한 맛을 내는 글루탐산 등의 유리아미노산을 다량으로 생성한다. 이 중 ‘KACC 93210’으로 명명된 균주는 식약처에서 인정하는 식품원재료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이 완료됐다. 미생물을 식품산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DB 등재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
KACC 93210은 전통메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국내외에 보고된 기존 균주와는 유전적·형태적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한국형 균주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 아플라톡신이나 스테리그마토시스틴·사이클로피아조닉산 등 유해한 곰팡이 독소를 생성하지 않는 안전한 곰팡이라는 점도 주목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전분·단백질 분해효소를 다량 생산해 소화가 쉽고,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이나 아스파르트산 등의 유리아미노산을 기존 유통균주 대비 1.5배 생산해낸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농진청은 국내 종균 생산업체 3곳에 이미 기술이전을 완료했다. 전문가들은 나머지 9개 균주에 대해서도 식약처가 적극 나서 등재를 완료한다면 우리 장맛이 더욱 풍부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주=김다정 기자 kimdj@nong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