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쌀값이 13만3000원대(80㎏ 정곡 기준)로 20년 전보다 더 떨어졌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도 풍년이 예상되면서 수확기 쌀값이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해 단경기(7~9월) 평균 역계절진폭은 역대 최고치인 7.9%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전체 농가의 42%를 점유하는 벼 재배농가의 올해 소득은 급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는 농촌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발표한 9월25일 기준 산지 쌀값은 13만3436원이다. 열흘 전(15일) 13만5544원보다 2108원(1.6%)이 떨어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하락할지 모르겠다”는 게 농업계의 중론이다.
13만3436원은 1995년 13만2680원과 1996년 13만7990원(일반미 1등 수매가격, 80㎏ 환산) 사이의 가격이다. 올라도 시원치 않을 판에 20년 전 가격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에 반해 일반 생활물품의 가격은 2~5배 상승했다. 서울연구원의 생활물가 조사에 따르면 라면(1봉지)은 1995년 300원에서 2015년 760원으로, 짜장면(1그릇)은 평균 2176원에서 4591원으로 20년 동안 각각 153%, 111% 올랐다. 담배는 900원에서 4500원(400%), 시내버스 요금은 340원에서 1300원(282%), 휘발유(1ℓ)는 538원에서 1674원(211%)으로 인상됐다.
특히 심각한 것은 2015년의 경우 전체 농가의 67.9%가 1년 농사를 지어 1000만원어치도 농축산물을 팔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농가 가운데 벼 재배농가가 45.2%를 차지한다(본지 2016년 9월28일자 4면 보도).
농민들이 ‘농촌이라는 거대한 양로원에 갇혀 숨만 깔딱거리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실제로 2014년 쌀 조수입은 평균 637만3000원이었다. 매월 53만1083원을 번 셈인데, 당시 1시간당 최저임금 5210원을 월급(월 209시간, 유급 주휴 포함)으로 환산한 108만8890원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애면글면 벼농사를 지어도 최저임금에 턱없이 부족한 소득을 올린 것이다.
충남의 한 벼 재배농가는 “쌀값이 20년 전과 비슷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 복장 터질 일이다. 희망이 안 보인다. 앞날이 막막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규모·품목별로 농가 양극화가 심화되는 문제도 난제다. 자칫하면 ‘농농갈등’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온다. 같은 벼농사를 짓지만 대농과 소농 간에, 또 벼농가와 과수·원예특작·축산농가 간에 소득 편차가 커지면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곡종합처리장(RPC) 운영 농협 조합장은 “소농들은 RPC 적자의 상당한 책임이 대농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일반 조합원은 조합에 손실을 끼치는 요인으로 벼농가를 지목하며 서로 반목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농업 전문가들은 “농업에서 쌀이 상징하는 의미는 너무나 크다”며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가 살림살이 피폐화나 농민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각성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총체적 대책을 시급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승인 기자 sile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