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는 휴대폰이나 자동차 같은 공산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농식품에도 브랜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풀무원이 1984년 내놓은 <풀무원 두부>가 농식품 브랜드의 효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달걀·김치·콩나물·돼지고기 등에도 브랜드가 붙기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 브랜드 시대가 본격화됐습니다.
이 시기부터는 식품업체뿐만 아니라 농협·영농조합법인 등 농업 생산자들 사이에서도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997년 1751개이던 농산물 브랜드는 10년 후인 2006년 6552개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브랜드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불과 10년 사이에 브랜드 수가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죠. 다만 2010년 이후에는 브랜드 개발 열풍이 한풀 꺾여 2011년에는 5291개를 기록했습니다.
‘쌀 브랜드’의 시작
얘기를 쌀 브랜드로 좁혀볼까요. 국내에 쌀 브랜드가 처음으로 생긴 시기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미곡종합처리장(RPC)이 들어서면서부터 쌀 브랜드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1991년에 국내 1호 RPC를 설치한 충남 당진 합덕농협 관계자들은 “RPC가 생기기 이전부터 농협 도정공장 등은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경기 이천시 10개 지역농협의 공동 브랜드인 <임금님표 이천쌀>은 1988년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쌀 브랜드는 1980년대 중후반쯤에 처음으로 생겼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후 다른 농산물 브랜드처럼 쌀 브랜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계기는 1993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입니다. 이 협상으로 인해 굳게 닫혀 있던 국내 쌀시장의 빗장이 풀렸고,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으로 수입쌀이 국내로 들어오게 되자 쌀산업을 둘러싼 위기감이 높아졌죠.
수입쌀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안은 쌀의 품질 고급화와 브랜드화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쌀 브랜드는 급격히 늘어나게 됩니다.
쌀 브랜드 난립…왜?
그렇다면 현재 쌀 브랜드는 몇개나 될까요. 매년 공식적으로 실시하는 관련 조사는 없지만, 농식품부가 파악하기로는 2014년 기준 1746개입니다. 이 중 시·도 브랜드가 7개, 시·군이 138개이고 자체 브랜드가 1601개입니다. 쌀 브랜드는 대부분 RPC들이 보유하고 있고, RPC가 전국 221곳인 점을 감안하면 RPC 1곳당 약 8개의 쌀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언뜻 봐도 상당히 많은 숫자입니다. 일본의 쌀 브랜드 숫자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브랜드 수가 많은 것일까요? 쌀가격이 판매처별로 다른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같은 쌀이라도 판매처가 어디냐에 따라 브랜드가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더 쉽게 말해 A라는 브랜드로 롯데마트에 납품되는 쌀은 품종 등 품질이 같아도 이마트에는 B라는 브랜드로 납품된다는 얘기입니다. 납품물량이 많을수록 가격이 더 낮고, 가격 차이가 나는데 같은 브랜드를 붙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쌀 브랜드가 난립했고 무늬만 브랜드도 많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습니다. 실제로 쌀 브랜드 가운데 전혀 사용되지 않는 브랜드가 30% 정도 되고, 상표 등록도 하지 않아 상표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브랜드가 37%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농식품부나 각 지자체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브랜드를 소수 정예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큰 성과는 없는 실정입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우수 브랜드’
물론 꾸준한 브랜드 관리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브랜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우수 브랜드’라고 불리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농식품부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함께 실시하는 ‘고품질 브랜드 쌀 평가’와 농협의 ‘RPC 대표 브랜드 쌀 평가’에서 선정된 것들이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두 평가에서 선정된 브랜드들은 믿고 구입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김포금쌀> <생거진천쌀> <청원생명쌀> <상상예찬골드> <한눈에반한쌀> 등 11개 브랜드는 고품질 브랜드 쌀 평가에서 우수 브랜드로 5회 이상 선정된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이름에도 나름대로 유행이 있는데요. 초창기 쌀 브랜드에는 ‘청결’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예전에는 쌀에 싸래기나 쌀겨·돌 등이 적지 않게 들어갔죠. 도정·선별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이물질이 들어 있지 않은 깨끗한 쌀이라는 점을 브랜드 이름에서 강조한 것이죠. 한때는 지역명을 브랜드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임금님표 이천쌀> <철원오대쌀> 등이 바로 그것이죠. 최근에는 <신동진1호쌀> <만세보령쌀삼광미골드>처럼 브랜드 이름에 품종명을 넣는 것이 뚜렷한 추세라고 합니다.
물론 개인 소비자들은 아직도 품종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도매업체나 단체급식업체, 즉석밥 등을 만드는 식품업체, 김밥 등 요식업체에서는 품종을 절대적으로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서륜 기자 seolyoo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