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전국 최대 닭 산지인 경기 포천시 영중면 양문사거리 이동통제소에서 방역요원들이 차량의 행선지를 일일이 확인하며 소독액을 살포하고 있다. 사진=김은암 기자
◆강추위 속 방역 분주=15일 정오 무렵,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가송리의 한 토종닭 농장. 흰색 방역복 차림의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 2명이 농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 농장은 전날 오전 사육 중인 토종닭 4만3000마리 가운데 40여마리가 갑자기 폐사하고, 나머지 닭도 호흡기질환 증상을 보이는가 하면 평소와 달리 웅크리고 앉는 닭이 많이 보이자 방역당국에 AI가 의심된다며 신고를 한 곳이다.
출입구를 지키던 방역지원본부 직원은 취재진에게 “검사 결과 AI 양성 판정이 나와 천안시 공무원과 용역직원들이 계사 안에서 살처분을 위해 가스로 질식사를 시키는 중”이라고 말했다.
천안에선 15일 오전에만 AI 의심신고가 한꺼번에 3건(동면 행암리, 광덕면 매당리, 성남면 신덕리)이나 접수됐다. 앞서 13일엔 성환읍 신가리 영농조합법인, 12일에는 연암대 실습농장에서 AI 의심축이 발견돼 방역조치가 이뤄졌다. 천안과 인접한 아산지역도 AI로 몸살을 앓고 있다. 11월23일 아산시 신창면 행목리의 산란계 농장에서 처음 AI가 발생한 이후 13일까지 8곳에서 AI로 닭과 오리 74만7000여마리가 살처분됐다.
경기지역도 AI 방역에 비상이다. 기온이 급락해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15일, 전국 최대 닭 산지인 경기 포천 전역은 방제작업으로 분주했다. 포천지역은 농가 225곳에서 1000만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다. 15일 밤 10시 현재 12농가가 AI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23농가가 185만6000마리의 닭을 살처분했다. 전체 사육마릿수의 20%에 가까운 닭이 매몰된 셈이다.
시는 거점통제소 6곳과 이동통제소 9곳을 운영 중이며, 10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확산 방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방역요원들은 차량의 행선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소독액을 살포하며 AI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축산농가 발 동동=닭을 살처분한 농가들은 한숨뿐이다. 보상금을 받아도 별로 남는 게 없는데다 언제 입식이 가능할지 지금 상황에서는 가늠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11일 정성껏 키우던 닭 3만마리를 매몰했다는 포천시 영북면의 한 농가는 “닭 이외에는 다른 농사가 없어 사실상 밥줄이 끊긴 셈”이라며 “AI가 다행히 빨리 종료돼 재입식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 입식할 병아리도 부족해 계사를 1년 놀릴지, 그 이상을 놀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1월16일 AI가 발생해 2만마리를 살처분했다는 충북 음성의 오리농가 정일헌씨(55·맹동면)는 “자식처럼 키운 오리들을 차가운 땅에 묻는 심정이 오죽했겠냐”면서 “사육농가 대부분이 계열농가로 업체로부터 사육비를 받아 생활하고 있는데, 자금줄이 차단돼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농가들의 방역 소홀을 AI 확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매뉴얼대로 축사 내외부를 주기적으로 소독하고, 차단방역에 심혈을 기울였는데도 AI가 발생했고, 소독과 차단방역 등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인근의 복지농장들까지 AI가 발생한 것을 보면 전파경로를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북 정읍시 감곡면에서 토종닭 6만마리를 사육하는 서유동씨는 “지난여름 폭염으로 닭·오리 200여만마리가 폐사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I가 발생해 농가들이 밤잠을 못 자고 있다”며 “축사 외부 소독뿐 아니라 외부인 및 사료차량 출입금지 등으로 모두들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다”고 말했다.
매년 AI와 구제역 등 가축질병이 발생하면서 축사 인근 마을 주민들의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닭·오리농장과 양돈단지가 밀집한 김제시 용지면에 사는 한 주민은 “구제역이나 AI 발생으로 우리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은 데다 겨울부터 봄철까지 방역초소를 지날 때마다 소독하느라 길이 미끄러워 사고 위험도 높다”며 “이제는 축사시설 등 축산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대수술을 해야 할 때가 됐고, 축산 농가들도 가축질병 발생에 대한 특단의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축협 관계자는 “2년 전 AI가 발생해 큰 아픔을 겪었는데, 이번에 또다시 AI가 터져 농가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가들은 대출금 상환유예나 병아리 입식이 가능해질 때까지 생활안정자금 지원 등 정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박진철 전남 나주축협 상무는 “축산차량과 축사는 방역차량으로 소독이 가능하지만 철새가 머무르는 호수나 강 등은 접근이 곤란해 공중에서 드론을 활용한 방역이 절실하다”면서 “농약방제용 드론은 잔류농약 등의 우려가 큰 만큼 가축방역 전용 드론을 지자체나 축협에 지원해 강가·호수 등의 방역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천안·아산=김광동, 포천=김은암, 음성·진천=류호천, 정읍=김윤석, 나주=오영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