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지자체·농가가힘을 모아 AI를 하루속히 종식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방역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전남 나주 AI 발생지역에서 방역요원들이 방역대를 살펴 보고 있는 모습. 김병진 기자
◆H5N6형에 안 맞는 SOP=AI 긴급행동지침(SOP)은 말 그대로 AI 발생 때 정부와 지자체·농가 등이 취해야 할 행동요령이다. 발생한 AI의 확산을 막고 이를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들인 것이다. 정부는 과거 수차례 AI 사태를 겪으면서 SOP를 여러번 개정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현행 SOP는 과거에 발생했던 H5N1·H5N8형 AI에 맞춰진 것으로 지금 전국을 휩쓸고 있는 H5N6형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예를 들어 현행 SOP에 따르면 AI 위기경보 단계는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4단계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H5N6형처럼 병원성이 강한 데다 빠르게 전파되는 AI에는 4단계 경보가 적기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단계의 경보가 H5N6형에 맞지 않다는 점은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AI의 경우 백신접종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4단계 경보를 2단계 정도로 고치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고위 관계자도 “지금의 SOP는 H5N6형에는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지키지 않는 SOP는 있으나마나=그나마 있는 SOP도 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특히 살처분 작업이 문제다. 검역본부 역학조사위원회 AI분과위원회(위원장 김재홍·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살처분 작업은 바이러스 전파가 가장 크게 우려되는 위험한 것임에도 철저한 관리 속에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실제 살처분 인력은 한 농장에서 살처분을 하면 1주일간 다른 농장에 들어갈 수 없도록 돼 있지만 이게 잘 지켜지는지 점검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심지어 살처분 현장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17일 충남 천안의 한 농장에서 진행된 예방적 살처분 과정에서 음식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농장 안으로 들어가 살처분 인력에게 음식을 전달했다. 원칙대로라면 방역관이 농장 출입구에서 배달원이 농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달걀을 수송하는 팰릿이 농장간에 섞여 사용되거나, 이동제한에 묶여 있는 농가들이 밤에 만나 술을 마시는 행위 등도 SOP를 무색케 했다.
김재홍 위원장은 “SOP가 잘 안 지켜지는 게 문제”라며 “산란계의 경우 달걀 수집 차량 소독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점도 AI 확산의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효능 떨어지는 소독제=소독제는 AI 방역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소독제가 제대로 효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농식품부는 소독제의 약효가 떨어진다는 현장의 지적이 나오자 지난해 1~5월 소독약 전수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27개 제품이 실제로 효과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 제조업체에 해당제품을 전량 회수하고 출고·판매를 중지토록 했다. 하지만 농가에 회수 대상 제품이 남아 있고 일부는 그대로 사용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AI 확진 농장의 소독제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178개 농장 중 156개 농장에서 효력이 미흡하거나 미검증·권고된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위 의원실은 정부의 효능 검증 시험은 영상 4℃를 기준으로 이뤄졌는데 이보다 낮은 겨울철 온도에서도 소독제가 효력을 갖는지는 현재까지 정확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는 소독제 공급 체계에서 비롯됐다. 현행 체계는 지자체가 소독제를 사서 농가에 공급하는데, 약효보다는 가격에 중점을 두고 소독제를 선정하기 때문에 약효가 떨어지는 소독제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에 소독제와 관련된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불량 소독제를 사용하는 이유다.
약효가 떨어지는 소독제는 특히 거점소독시설에서 AI를 확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독약을 타고 흘러내린 바이러스가 죽지 않고 바닥에 있다가 다른 차량에 옮겨 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거점소독시설은 많은 축산 관련 차량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소독에 관한 전문가가 관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살처분 속도 높여야=신속한 살처분을 위해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인력풀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딘 살처분이 이번 AI의 급격한 확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살처분은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24시간 내에 이뤄져야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번 AI 살처분의 경우 평균 2.3일이 소요되고, 사육마릿수가 많으면 1주일까지 이어졌다. 한때 살처분 대기마릿수가 427만마리에 이르기도 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살처분이 하루 늦어질 경우 바이러스 전파력은 2~3배 늘어난다. 산란계는 살처분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감안해 미리 인력을 충분히 확보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살처분이 늦어진 이유는 살처분 마릿수가 워낙 많은 데다 산란계의 사육 특성상 많게는 12단 케이지에서 죽은 사체를 꺼내는 작업 자체가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일 살처분을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도 작용했다. 살처분 인력 및 매몰지 확보가 어려운 것이다. 매몰지의 경우 규정대로라면 농가가 미리 확보하고 있어야 하지만 법과 현실의 괴리가 있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김 장관은 “미국의 경우 살처분에 3000여명을 동시에 투입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다”며 “우리나라도 결국 미국과 같은 시스템으로 가야 할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