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벌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도입한 벌꿀등급제가 4년째 시범사업에 머무르고 있다. 3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2017년부터 본사업을 실시하겠다던 당초 정부 방침보다 1년 더 연장된 것이다. 양봉업계에선 벌꿀등급제 본사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지만 사업 확대의 칼자루를 쥔 농림축산식품부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벌꿀등급제의 시범사업이 연장된 이유와 본사업 시행을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등급제 활성화해야=벌꿀등급제는 수입 벌꿀과의 품질 차별화, 국내산 벌꿀에 대한 소비자 신뢰성 제고를 위해 2014년 1월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시작했다. 등급은 축산물품질평가원(축평원)이 판정하며 수분·당분함량과 탄소동위원소에 따라 1+·1·2등급 등 3개 등급으로 나뉜다.
축평원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3년간 등급판정 물량은 8553드럼(1드럼=288㎏)이다. 이는 2016년 한해 동안 생산된 벌꿀량(4만8000드럼)의 17.8% 정도에 불과하다. 농식품부가 등급제 본사업 승인을 망설이는 이유다.
그렇지만 한국양봉농협을 비롯한 전국 양봉사업 관련 농협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등급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고, 등급판정을 받으려는 농가들도 늘고 있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축평원 의견도 이와 비슷하다.
실제로 등급제 참여농가는 시범사업 초기 328가구에서 2016년 830가구로 증가했다. 등급판정 벌꿀량도 1108드럼에서 5550드럼으로 늘었다. 3년 사이 판정물량이 5배가량 많아진 것이다.
양봉업계의 한 관계자는 “홈쇼핑이나 대형마트에서 등급이 매겨진 벌꿀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면서 “홍보를 통해 인지도를 조금만 더 높인다면 등급제가 양봉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쪽짜리 등급제에서 벗어나야=등급제 본사업을 시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등급 기준이 이원화됐다는 점이다. 한국양봉협회가 벌꿀등급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등급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축평원과 양봉협회 사이 의견차가 생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수분함량 기준이 대표적이다. 축평원의 등급제에선 1+등급을 받으려면 수분함량이 20% 이하가 돼야 한다. 반면 양봉협회는 23% 이하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처럼 등급 기준이 달라 소비자들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온다. 농식품부도 본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조건으로 등급 기준 일원화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올 한해 축평원과 양봉협회의 등급 기준 합의가 벌꿀등급제 본사업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축평원 관계자는 “천연벌꿀과 사양벌꿀의 철저한 구분으로 국내산 벌꿀에 대한 소비자 불신을 해소하고, 양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벌꿀등급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축평원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등급제를 홍보할 계획이며 양봉협회와도 등급 기준을 놓고 지속적으로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희 기자 mooni@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