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전문가들은 구제역 확산 원인을 ▲축산농가의 방역의식과 방역활동 부실 ▲정책과 현장의 엇박자 ▲허술한 방역정책 순으로 꼽았다. 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대규모 발생을 부른 이유로 ▲첫 발생 때 방역당국의 초동대처 미흡 ▲축산농가의 방역의식 및 방역활동 부실 ▲정책과 현장의 엇박자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의 무능과 농가의 안일한 방역의식 등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구제역과 AI가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구제역 대응 문제점
백신접종 기피 ‘도마위’…42% 지적 O형 외에는 대응책 없어 ‘갈팡질팡’
구제역 사태의 가장 미흡한 대처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2%가 ‘축산농가의 방역의식·방역활동 부실’을 꼽았다. 수의사 등 일선 방역을 담당하는 전문가 대부분이 이 답을 선택했다.
◆축산농가, 방역의식 결여=올해 구제역이 11개월 만에 또다시 발생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먼저 백신접종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도 구제역 백신의 효능을 놓고 방역당국과 농가간 ‘네 탓’ 공방이 벌어졌다.
방역당국은 농가가 제대로 백신접종을 했으면 구제역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인 반면, 농가는 방역당국의 방침에 따라 접종했는데도 구제역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 전문가들은 “접종 과정에서의 부상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산유량 감소와 유·사산을 걱정해 백신을 놓지 않는 농가가 많다”고 전했다. 최현주 전북 정읍시 가축방역팀장은 “일부 농장에선 올바른 백신접종으로 방어력을 높이기보다 단순히 접종 여부만을 중요시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전국 소 일제접종(2월8~14일) 후 항체 형성률이 98.5%로 나타나고, 구제역도 발생하지 않아 방역당국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백신접종 사후관리 엉망=백신접종과 사후관리를 농가에만 맡겨둔 것도 무책임했다. 축산농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급받거나 축협에서 구한 백신을 직접 접종하든지 공수의사의 도움을 받는다. 방역당국은 농가에 백신 구입비 지원과 접종 설명서를 제공하는 게 역할의 전부다.
또 축산농가가 백신을 제대로 접종했는지 검증하는 기능도 엉망이었다. 전체 농가 중 10%만 표본으로 선정해 농가당 고작 한마리를 골라 항체 형성률을 추정한 방식은 많은 문제를 노출했다. 이 때문에 방역당국의 소 항체 형성률(95.6%)은 서류상의 공허한 숫자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이 구제역 확산 원인의 두번째 이유로 ‘정책과 현장의 엇박자(31%)’를 꼽은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O형 외엔 대응 시나리오 없어=방역당국의 허술한 대응책이 문제였다는 응답도 15%에 달했다. 사상 처음으로 서로 다른 두개의 유형인 ‘A형’과 ‘O형’이 발생하면서 방역당국은 우왕좌왕했다. O형을 제외한 다른 유형의 구제역 발생에 대비한 대응 시나리오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방역당국은 그동안 O형에만 초점을 맞춰 백신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밖에 해외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유입되는 원인 경로를 파악하는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응답도 나왔다.
●AI 대응 문제점
“초동대처 체계부족…골든타임 놓쳐” 소독·차단방역 원칙 위반도 문제
AI는 ‘첫 발생 때 방역당국의 초동대처 미흡(41%)’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컨트롤타워 부재=전문가들은 “차단방역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없어 갈팡질팡하는 사이 AI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방역당국의 초기대응은 한박자씩 늦었다. 방역당국은 AI 바이러스가 2016년 10월28일 철새 분변에서 처음 검출된 이후 2주일이 지난 11월11일이 돼서야 첫 조치를 취했다. 그나마 ‘철새 주의’ 단계 경보를 발령하고 예찰지역을 지정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과거와 달리 이번 AI 바이러스는 하룻밤에 수백·수천마리가 폐사할 정도로 독성이 강한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후 AI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는데도 방역당국은 탄핵정국 등으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총리·부총리협의회에 보고된 것은 11월16일 AI 확진 판정이 난 후 15일이 지난 12월1일에 이르러서였다. 초기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이다.
◆유명무실한 방역의식=‘축산농가의 방역의식·방역활동 부실’이 이번 AI 사태를 키웠다는 응답도 32%에 달했다. 방역당국의 ‘H5N6형 AI 바이러스의 중간 역학조사 결과’는 해이해진 축산농가의 방역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양성 확진 산란계 농가 38곳 중 34곳은 운반차량이 농장으로 직접 진입해 달걀을 실어나갔고, 36곳은 집란실 입구에서 차에 싣기도 했다. 특히 28곳은 운반기사가 방역복을 입지 않았다. 임경종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장은 “현장에서 ‘내 농장은 내가 지킨다’는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장과 거리 먼 방역정책=‘정책과 현장의 엇박자’란 응답(23%)이 세번째로 꼽혔다. 소독이 대표적인 사례다. 차량·사람에 대한 소독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지만, AI용 소독제는 분변과 같은 유기물이 묻어 있으면 그 효과가 급감한다. 그런데도 실제 현장에선 업무상 편의 등의 이유로 세척하지 않고 소독약만 뿌려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아무리 훌륭한 방역대책이라도 현장의 협조 아래 의도한 대로 적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했다.
김태억·최문희 기자 eok1128@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