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횡성에서 양봉을 하는 윤상복씨(49)가 “갈수록 아카시아꿀 작황이 나빠진다”며 벌집 속에 꿀이 얼마나 차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
올해로 35년째 양봉업에 종사하는 이상목씨(65·경남 창원)는 요즘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올해 벌통 300여개에서 채집한 아카시아꿀은 6t 정도로, 평년의 절반도 채 안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아카시아꽃이 피어 있는 기간도 길어야 10일밖에 안돼 (아카시아꿀을) 얼마나 더 수확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이상기온과 병충해로 국내 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아카시아꿀의 생산이 부진해 양봉농가들이 한숨만 짓고 있다.
양봉업계에 따르면 아카시아꽃은 아침 16~17℃, 낮 24~25℃의 기온을 보이는 5월~6월 초순 사이에 핀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양봉농가는 꽃이 먼저 피는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북부지방까지 옮기며 꿀을 채취한다.
그런데 올해는 아카시아꽃 꿀 분비량이 특히 많이 줄었다는 게 양봉농가들의 설명이다. 5월 내내 낮은 덥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아카시아꽃에 수분이 많이 생긴 탓이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가가 수확하는 꿀은 예전에 벌들이 물어오던 꿀양의 절반도 채 안되는 실정이다.
또 꽃도 전국적으로 거의 동시에 피어 꿀을 채취하는 기간마저 줄어버렸다. 설상가상 몇해 전부터 미국선녀벌레가 아카시아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꽃 생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봉농가 김광배씨(68)는 “충남 논산에서 시작된 채밀이 이달 말쯤 강원 철원에서 끝날 예정인데 걱정”이라며 “과거엔 아카시아꽃이 활짝 필 때면 하루에 한번 정도는 채밀했지만 올해는 3~4일에 한번 수확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지금 같아서는 벌통 운반비와 기름값·인건비도 건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고정양봉을 하는 농가도 마찬가지다. 윤상복씨(49·강원 횡성)는 “아카시아꿀 채취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어 올해 농사를 망친 것 같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양봉농가들은 “아카시아꿀은 양봉농가의 주소득원인 만큼 정부가 일반 작물의 재해기준에 준해 정책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관련 전문가들은 “양봉농가가 꿀을 안정적으로 수확할 수 있게 중장기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상균 전 한국양봉농협 조합장은 “정부 차원에서 아카시아의 개화시기를 지금보다 앞당기거나, 늦게 피는 품종을 개발해 꿀 수확시기를 연장해야 한다”며 “특히 국유지 조림사업 때 헛개나무·음나무 등 6~8월에도 채밀할 수 있는 나무를 의무적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가도 자구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꿀 생산에만 의존하지 말고 화분·로열젤리·프로폴리스 등 양봉산물을 생산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