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물가지수는 통계청이 1965년부터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다. 전체 가구의 소비지출액 중 1만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460개 품목의 가중 평균으로 산출한다. 가중치가 가장 높은 건 주거비 항목이다. 전세 가중치는 49.6에 달하고 월세는 43.6이다. 여기에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관리비 지수도 18.6을 차지한다. 가중치의 총합이 1000이기 때문에 전·월세와 관리비 항목만 해도 물가지수의 10분의 1을 웃돈다.
이에 비해 전체 농축산물 가중치는 66이다. 가정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이 1000원이라고 할 때 농축산물에 쓰는 비용 합계가 66원이라는 뜻이다. 휴대전화요금 한품목의 가중치가 38.3이란 점을 고려하면, 농축산물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데도 농축산물 체감물가가 민감한 것은 공산품에 견줘 구입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농축산물은 매일 소비되는 특성 탓에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충격이 크다. 예컨대 상추와 선풍기 가중치는 0.2로 똑같다. 만약 상추 가격이 오른 만큼 선풍기 가격이 떨어지면 소비자물가지수는 변동이 없게 된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물가가 올랐다고 느낀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구입하는 상추 가격이 선풍기보다 더 민감한 탓이다. 장롱은 가중치가 1.3으로 상추의 6.5배에 달하지만, 체감물가는 상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일반 가정의 구입 주기가 10년 안팎으로 워낙 긴 탓이다.
심리적인 요인도 크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내린 상황보다는 오른 상황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중치가 1.1인 복숭아 가격이 5% 상승하고 역시 1.1인 참외가 5% 하락하면 전체 가구의 씀씀이는 종전과 똑같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복숭아 때문에 물가가 오른 것으로 인식한다.
비교 시점도 중요하다. 소비자물가는 1개월 또는 1년 전처럼 사전에 정한 기준시점과 비교한다. 그렇지만 체감물가는 가격이 가장 싸거나 최근의 구입시기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2016년 6월 2000원 하던 시금치 가격이 2017년 5월 500원으로 폭락했다가 6월에 1000원으로 반등한 상황을 가정해보자<그래프 참조>. 1년 전 가격과 비교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정확히 절반(2000→1000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한달 전보다 시금치물가가 2배(500→1000원) 올랐다고 느낀다. 농심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상황에서 ‘시금치 가격 두배 폭등’ 식의 기사가 종종 보도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비자물가의 근원적인 문제점도 있다. 한여름 수박 가격이 변동 없이 소비만 늘어난 경우를 보자. 소비자물가지수는 사용량이나 구입량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가격변동만을 측정한다. 이 경우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물가지수는 변동이 없다. 하지만 수박 구입량을 늘린 주부는 이를 물가상승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먹성 좋은 중고생을 3명 둔 가정이 초등학생 한명을 둔 가정보다 농축산물 가격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은 이런 점을 감안해 가중치 변경 주기를 앞당기고 있으며, 생활물가·근원물가 같은 다양한 지수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