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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중국집 ‘산골짜장’의 하루 글의 상세내용
제목 시골 중국집 ‘산골짜장’의 하루
부서명 농업기술센터 등록일 2017-08-29 조회 1387
첨부  



“간짜장 세개 해주소~ 간짜장은 안되는데…”


남편이 짜장 만들어놓으면 하루 장사 준비 끝 메뉴는 짜장면·짬뽕·탕수육뿐


손님 별로 없는 요즘 남편은 다른 데 일 가고 아내 혼자 장사에 배달까지


지나가다 들른 동네 주민들로 식당 금세 왁자지껄





대한민국 어느 고장을 가나 한두곳쯤 찾을 수 있는 것이 중국집이다. 서울 명동 한복판에도, 전라도 시골 면 소


재지에도, 남쪽 끝 작은 섬 마라도에도 중국집은 있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고 모두 같은 중국집은 아니다. 도시


의 중국집은 도시만의 색깔을, 관광지의 중국집은 관광지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중 시골 중국집의 색깔은


낡은 장화에 묻은 ‘흙색’일 것이다. 밭에서 피 뽑다가 바지에 묻은 흙을 미처 털어내지도 못한 채 허기를 채우러


오는 곳, 모내기하느라 흙범벅이 됐지만 손만 쓱쓱 닦아내고 먹을 짜장면을 논두렁까지 배달해주는 곳, 농번기


에 함께 바쁘고 농한기에는 덩달아 한가해지는 곳, 시골 중국집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산골짜장’은 진짜 산골에 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지리산이 앞산이고 지리산과 맞닿아 이어지는 삼


봉산이 뒷산인 이 산골마을에서도 맨 안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영주(62)·김태숙씨(55) 부부가 산골짜


장의 주방을 여는 시간은 아침 7시. 주방장인 남편 이씨가 하루 동안 팔 짜장을 볶는다. 웍(중국요리용 냄비)에


기름을 넣고 춘장을 달달 볶다가 전날 아내 김씨가 준비해둔 양파와 지난 장날 인월면 인월리 인월장에서 사다


놓은 호박·당근까지 넣고 볶아주면 짜장 준비 끝.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다. 하루 장사 준비를 다 마친 것이다.



 


“요즘처럼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는 남편이 다른 데 일하러 나가요. 아침에 짜장 볶아두고 나가면 나머지는 제


가 혼자 하죠.”



워낙에도 메뉴가 단출한 집이다. 짜장면·짬뽕·탕수육이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남편이 일 나가는 날에는 오직


짜장면만 된다. 손님이 오려나?



“4년 전 문을 막 열었을 때는 손님이 많았어요. 산골짜기에 중국집이 생겼다고 신기해서 찾아오더라고.”



사람들의 호기심이 잦아드는 데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손님은 줄었고 요즘처럼 더울 때는 하루 종일 손님


구경 한번 못할 때도 있다. 비어가는 중국집을 채운 것은 동네 주민들이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고양이 손도


아쉽다는 시골, 너 나 할 것 없이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가니 밥할 사람도, 시간도 없는 것이 요즘 형편이다.


그러니 지척에 새로 생긴 중국집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남편이랑 나랑 둘이서 하니까 배달은 아예 생각도 안했어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모내기하느라 바쁘다고 논


으로 짜장면 좀 보내달라는데 모른 체할 수가 있나. 하는 수 없이 배달을 하기 시작했지.”



남편이 있을 때는 남편이, 남편이 없을 때는 아내가 짜장면을 차에 싣고 논으로 나간다. ‘철가방’을 갓 만든 짜


장면으로 채우고, 발 푹푹 빠지는 논두렁에 들어가야 하니 장화로 무장하고, 아내가 직접 담근 짭짤한 김치도


한사발 잊지 않고 챙겨서.



“모내기 끝나고 좀 한가했는데 요새 비가 많이 와서 벼가 많이 넘어졌어요. 벼 묶느라 다들 바쁘니까 또 짜장면


배달이 들어오네. 요 며칠 우리도 덩달아 바빴지.”



벼 묶는 일이 끝나가면서 다시 한가해진 요즘, 식당 안은 적막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하루가 끝나나 싶었는데


갑자기 길 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짜장면 세개 해주소. 간짜장으로.”



앞 동네에 살다가 이사 간 반가운 얼굴이다. 오랜만에 왔다가 밭에서 만난 동네 사람들하고 짜장면 먹으러 왔


단다. 손을 탈탈 털고 일어나던 아내가 한마디한다.



“간짜장 안되는데….”



“안돼? 그럼 그냥 짜장으로 줘.”



“아이고, 우리는 지심 매다 와서 흙투성이네.”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산골짜장’에서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고 있다. 장화에 팔토시, 그 위에 흙까지 밭일하던 차림 그대로 와서 짜장면을 먹는 모습은 시골 중국집의 흔한 풍경이다.





식당이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아내가 주방으로 들어가 면을 뽑는 사이 손님은 다섯으로 늘었다. 자리 잡고 앉


은 이들이 인근에서 배추모종 내고 있을 동네 젊은 부부를 불러낸 것.



“짜장면 두개 더, 곱빼기로. 젊은 사람들은 많이 먹어야 돼.”



마침 우편물 배달 온 집배원에게도 짜장면을 권하는 바람에 손님은 여섯으로 늘었다. 느긋하던 아내의 손길이


바빠졌다. 팔팔 끓는 물에 면 넣고 돌아서서는 단무지와 양파를 꺼내고 한쪽에는 찬물을 받아 삶은 면 씻을 준


비를 한다. 손님들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냉장고로 가서 음료수를 직접 꺼내고 컵을 챙겨가는 아저씨, 주방으


로 들어와서 김치를 자르고 춘장을 덜어내는 아주머니, 오늘이 처음이 아닌 듯 손길이 익숙하다.

드디어 오늘 첫 짜장면이 완성된 순간, 길 쪽에서 철가방을 손에 든 이가 들어서며 “짬뽕 시키신 분!”을 외친다.


어, 여기가 중국집인데 누가 짬뽕 배달을 시켰단 말인가?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밝혀진 정체는 역시 동네 주민


이다. 어제 논에서 쓰러진 벼를 묶다가 짜장면을 시켜먹었는데 그때 두고 간 철가방을 오늘 가져오면서 농을


친 것이다.



“집이 논에는 벼 안 쓰러졌단가? 나는 오늘에사 벼 묶는 것이 끝났네.”



그렇게 손님 세명 더 추가다.




시원한 산속에서 달달한 짜장면 한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늦여름 들판으로 일하러 돌아가는 시간. 손님들


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좁은 홀 안 가득 다시 적막이 들자 아내는 느긋이 밥 한술을 뜬다.



오늘 손님이 열명 남짓. 욕심 부리자면 턱도 없이 적지만 이 산골 중국집이 이만하면 되지 않겠는가. 조만간 추


수가 시작되면 다시 장화 신고 논으로 달려가야 할 터.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마침 남편이 볶아


놓고 간 짜장도 얼추 다 썼으니….




출처: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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