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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할매 할배 이야기] 가난 때문에 포기한 공부…지금은 초등학교 실버보안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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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명 | 농업기술센터 | 등록일 | 2018-01-19 | 조회 |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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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농민신문
[할매 할배 이야기] 조대호 할아버지<경기 양평> 4대째 강하면에 살고 있는 토박이 방학 땐 노인정 형님들과 하루 보내 세상에서 가장 짙고 가장 아프지만 또 가장 행복한 선(線)이 있다. 우리네 ‘할매’ ‘할배’ 얼굴에 새겨진 주름이다. 흉터처럼, 훈장처럼 주름을 지닌 ‘할매’ ‘할배’를 만나 그네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힘들고 슬프고 아프고 또 때로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인생 굽이굽이가 그 주름에 고스란히 각인돼 있으니 말이다. 밤새 내린 눈이 마당에 하얗게 쌓인 경기 양평군 강하면의 한 노인정. 추위를 막느라 꽁꽁 닫아놓은 창문 밖으로 쩌렁쩌렁 말소리가 새어 나온다. 올해 일흔여섯이 된, 노인정 막내 조대호 할아버지다. 일찌감치 약주 한잔 걸친 그는 “어디서 막내가 소리를 지르냐”는 익숙한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내가 보안관이야! 학교에서 아이들 싸우면 나한테 혼나! 형님, 오셨어?” 마침 노인정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네 형님에게 인사를 건넨 그는 4대째 이곳에 살고 있는 토박이다. 한국전쟁 때 근처 여주로 피난 가느라 잠시 비운 것 말고는 내내 이곳에 살았다.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어. 그때는 공납금 안 내면 학교에 못 나오게 했거든.” 식구들 먹을 보리밥 한그릇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학교에 낼 공납금을 쉬이 마련해내는 집이 흔할 리 없었다. 학교 대신 들과 산에서 집안일을 거들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피난을 다녀온 뒤 열일곱 청년이 돼서야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한참 동생뻘인 아이들과 교실을 나눠써도 학교가 좋았지만 가난은 그 즐거움을 길게 허락하지 않았다. “공납금 못 내서 또 그만뒀지 뭐.” 학교 대신 논으로 간 그는 평생 소처럼 일했다. 쇠똥구리가 굴리는 쇠똥처럼 논이 불더니 늘그막에는 ‘20마지기(약 1만4000㎡)’까지 늘어났다. 그동안 세명의 자식은 장성해서 제 몫을 해내고 있고 토끼 같은 손주도 생겼다. 힘에 부쳐 지난해부터는 농사일에서 손을 뗐지만 마냥 놀 수가 없어서 소일 삼아 인근 초등학교에서 실버보안관을 한다. 그도 지금은 방학이라 이렇게 노인정에서 형님들과 수다 떨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들·며느리와 손자들하고 같이 사는데, 아침에 며느리가 출근하면서 술 한잔하라고 용돈 쥐여주고 가거든. 그 돈으로 소주 한잔씩 하면서 사는 거지 뭐.” ‘깡그리 죽일 놈들’인 정치인 욕을 거나하게 하다가도 자식·손자 이야기만 나오면 눈가에 주름을 길게 늘어뜨리며 선하게 웃음 짓는 그는 오늘도 소주 한잔, 막걸리 한잔 걸치고 노인정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대호가 막걸리 다 먹었구나!” 형님들의 여전한 핀잔을 들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