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제주 서귀포경찰서 대정파출소 자율방범대 사무실에서 대원들이 순찰에 앞서 마늘 수확 동향과 순찰 동선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 농산물 도난방지 야간방범순찰 따라가보니…
25~50세 주민들 뭉친 대정읍 자율방범대, 마늘 수확철 맞아 6월16일까지 야간특별순찰
18년간 농산물지킴이 역할 최근 5년 마늘 도난사건 없어
경찰청 선정 베스트·우수 자율방범대로 뽑히기도
“우리 지역 농민분들이 그야말로 피땀 흘려 지은 농산물입니다. 단 한건의 도난사고도 없도록 잘 지켜냅시다. 자, 출동할까요?”
24일 밤 9시, 제주 서귀포경찰서 대정파출소(소장 김석환) 자율방범대(대장 양경주) 사무실. 양경주 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10여명의 대원들은 한 손엔 경광봉, 또 다른 손엔 손전등을 들고 5대의 차량에 2~3명씩 신속하게 올라탔다.
이들이 처음 들른 곳은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의 한 도로변. 한눈에 봐도 지름 5㎝ 이상의 알 굵은 상품 마늘이 50m가량 길게 널려 있었다.
“야, 마늘 참 좋네!”
대원들은 감탄사를 절로 뱉었지만 이내 예리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가로등이 밝고 차량통행이 비교적 많은 곳이라 감히 훔쳐갈 생각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게 대원들의 이구동성이었다.
이어 빨간 경광등을 지붕에 단 채 씨억씨억 내달리던 방범대원 차량이 상모리의 한 마늘밭 가장자리에 스르륵 멈춰 섰다. ‘칠흑 같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 전형적인 농촌의 깜깜한 밤 들녘이었다. 밭에는 주대를 잘라낸 마늘이 가지런히 펼쳐져 있고, 한쪽엔 마늘을 가득 담은 빨간 망포대도 쌓여 있다. 차량에서 내린 방범대원들은 밭을 헤집은 발자국은 없는지, 망포대를 뒤적인 흔적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휴우, 다행이네’ 하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예정된 순찰이 끝난 이튿날 새벽 2시가 돼서야 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자율방범대원들이 24일 밤 대정읍 일과리 도로변에서 야간순찰을 하며 건조 중인 마늘을 살펴보고 있다.
마늘 수확철을 맞아 대정읍 일대에선 25~50세 주민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가 5월11일부터 6월16일까지 야간(밤 9시~이튿날 새벽 2시) 특별방범순찰을 돈다. 자영업자·농민·주부·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인 52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도내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최대 마늘 주산지 주민들답게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올해 18년째로, 2014·2016년 각각 경찰청으로부터 ‘베스트 자율방범대’ ‘공동체 치안 우수 자율방범대’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석환 소장은 “하루 인력 5~6명이 전부인 우리 파출소 입장에서 자율방범대는 정말 큰 힘”이라면서 “최근 5년 내 우리 지역에 마늘 도난사건이 단 한건도 신고되지 않은 건 자율방범대의 역할이 크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농민들의 반응도 뜨겁다. 양정규 동일2리 이장은 “다들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밤잠 설쳐가며 농민들이 애써 키운 농산물을 지켜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로사항이 없지는 않다. 차량, 기름값, 휴대전화 비용, 제복 구입비 등이 모두 대원들 자부담이어서다. 대원들은 무전기만이라도 정부에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말했다. 양경주 대장은 “정부로부터 지원받기는커녕 오히려 사재를 털어야 하는 자율방범활동이지만 ‘농산물 도난사건 제로(0)’ 기록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