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농민신문
한층 똑똑해진 소비자 따라가려면 교육 틀 바꾸고 농약 경각심 가져야 충남 홍성에 뿌리 내리고 사는 즐거움 중 하나는 자연에 가까운 건강한 먹을거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마을만 해도 대다수 농가가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필자와 긴밀히 소통하는 지역의 귀농 선후배들도 예외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곳에서는 이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짓는 게 소수의 특별한 농법이 아니라 보편적 방법이 된 셈이다.
그간 하늘이 도와서인지 지난 20여년간 병충해로 어려움을 겪은 기억은 몇번 되지 않는다. 특히 벼농사는 오래전에 벼멸구와 혹명나방이 한번씩 찾아온 것 말고는 큰 피해가 없었다. 밭농사도 김장무와 갓을 두어번 다시 심은 적이 있지만, 그 또한 나눠 심었기에 농사를 망친 적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자연은 우리 부부에게 감당할 만한 시련만 준 듯하다.
아울러 농사를 거듭할수록 병해충에 대비하는 수단도 늘었다. 고추처럼 병이 많은 작물은 두세곳으로 나눠 심어 피해를 줄였다. 벼농사 역시 수량이 줄지 않는 한도까지 모내기를 늦춰 더는 물바구미가 두렵지 않게 됐다. 요컨대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되도록 많이 수확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농사도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앞서가려고 무리수를 둘 때도 있었지만, 때마다 결과가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했다.
한번은 남들보다 보름도 더 이르게 못자리를 설치한 다음날 폭우가 내려 모를 구하느라 애먹은 적도 있었다. 지나고보니 자연은 한 어리석은 농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인 농부스러움, 즉 조급증 대신 은근과 끈기를 선물했음을 깨달았다.
그 덕분에 이제는 동동거리지 않고 조금 늦으면 늦은 대로 느긋이 진행하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귀농 초기에 특유의 호기심과 관찰력이 농사를 관행이 아닌 생태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 농사 첫해에 논에다 친환경재배를 하고 남은 한곳에는 중기 제초제를 뿌린 뒤 틈나는 대로 논의 변화에 주목했다. 제초제를 뿌린 풀들의 사지가 틀어지는 것을 본 뒤 크게 놀라 이듬해부터 모두 친환경재배로 바꿨다.
몇년 뒤에는 식물전멸약이라 불리는 모 제초제의 문제를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고, 만인(萬人)을 목표로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수년 뒤 국내에서도 일본이나 유럽연합(EU)처럼 그 제초제의 유통이 금지되기까지 교육한 인원이 대략 1만여명에 가까웠다.
필자가 보기에 농민들이 농약에 경각심이 적은 이유는 새해 영농설계 교육이 대부분 ‘무슨 증상이 있을 때 어떤 농약을 치라’는 식의 교수법 때문이라고 본다. 지급되는 교재 또한 제조사의 홍보책자처럼 회사별로 상품명이 줄줄이 적혀 있으니 문자 그대로 농약에 인이 박일 만하다. 그러니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한 먹거리보다는 다수확과 그에 따른 소득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농민들을 대상으로 농약의 잔류 특성을 세세히 지적하면 “그렇게 위험한 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앞으로 관계기관의 교육은 농약의 효능뿐만 아니라 위험성과 폐해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야 하지 않을까. 방제 때 마스크와 방제복 착용률을 높이려면 현재 방식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나아가 영농교육의 큰 틀이 생태적 관점에서 자연과 환경에 부담을 줄여가는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기존의 틀을 단시간에 깨기는 쉽지 않겠지만, 루돌프 슈타이너의 생명역동농법에서 자연재배에 이르기까지 보다 폭을 넓혔으면 한다.
농민들이 더이상 팔 작물과 먹을 작물을 가르지 않도록, 일과 삶이 통합되도록 인문학에 기반한 농사철학을 도입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어느 농민의 지적처럼 농업 관련 기관이 농약지도소로 남지 않으려면 지금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이 뒤따라야 할 때다.
한층 똑똑해진 소비자들을 농업의 우군으로 만들기에는 기존 프레임이 낡아도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이환의<홍성귀농귀촌지원센터장·전국귀농운동본부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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