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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노인돌봄서비스 요양보호사 글의 상세내용
제목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노인돌봄서비스 요양보호사
부서명 농업기술센터 등록일 2018-09-21 조회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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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농민신문





 


혼자여서 멈췄던 시간, 함께있어 흐르는 시간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기자가 간다 (4)노인돌봄서비스 요양보호사


혼자있어 외로움 느낄 어르신 집 자격증 있는 요양보호사 방문 식사·청소·외출동행 등 서비스


청소 때 무심결에 물건위치 바꿨다 “어르신들 못 찾는다” 충고에 진땀 손빨래부터 요강 씻기까지 ‘열일’


오후에 찾은 외로움 많은 할아버지 오랜만에 집 북적이자 얼굴에 웃음꽃 딸에게 하듯 ‘호박챗국’ 요리 요청


저녁식사 같이하고 당뇨약까지 챙겨 무뚝뚝하던 할아버지, 헤어지기 전 “시간 보내줘 고맙다” 인사 건네

 




곧 추석이다. 사는 게 팍팍해 명절도 부담스러운 세상이 됐다지만, 여전히 가족이 모이는 그날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고향에 계신 홀몸어르신들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시골집에 혼자 남기를 택한 연로한 어르신들은 으레 무기력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버거운 집안일을 해줄, 혹은 말동무가 돼줄 누군가의 손길이 늘 그리운 법이다.



이같은 홀몸어르신들을 위해 정부는 ‘노인돌봄종합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대상자는 만 65세 이상 신청인 가운데 가구소득·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선정한다. 이들은 요양보호사로부터 식사·청소·외출동행 등 주기적인 방문서비스를 받는다. 자주 만나 서로 살을 비비고 말을 섞다보니 마음이 맞는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는 모녀나 부녀처럼 지내기도 한다. 이에 기자도 노인돌봄종합서비스 요양보호사 체험을 통해 홀로 사는 농촌 어르신들의 삶 속으로 한발짝 들어가봤다. 단, 요양보호사는 자격증이 필요한 일이기에 15년 경력의 베테랑 요양보호사와 동행했다.



 




청소·빨래 등 가사는 기본



“응? 엄마가 어디 가셨지?”



11일 오전 8시, 고요하던 강원 삼척시 노곡면의 한마을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오전 8시10분부터 11시10분까지 노인돌봄종합서비스를 받기로 한 김 할머니(88)가 사라졌기 때문. 거동이 불편해 멀리 가지도 못하는 어르신이 뒷간에도, 텃밭에도, 옆집에도 없었다.



“어디 나가실 때 신으시는 나들이용 신발이 없네요. 아침에 오겠다고 몇번이나 말씀드렸는데, 또 깜빡하셨나 봐요. 근처에 가실 만한 곳을 찾아보고 올게요.”



김 할머니를 5년째 모시고 있는 김영란 요양보호사(61·삼척종합재가노인복지센터)는 어르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는 듯했다. 할머니가 외출할 때는 어떤 신발을 신는지, 자주 마실가는 곳은 어디인지 알 만큼 말이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났을까. 요양보호사가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돌아왔다. 할머니를 찾은 곳은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경로당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웃이 경로당 쪽으로 나간다기에 얼른 차를 얻어타고 출타하신 것이다. “어디 다녀오셨느냐”며 첫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들뜬 미소를 지었다.



“경로당에 전부 모이는 날이라요. 아침밥도 주고, 오늘은 거(거기) 가야 재밌어요. 혼자 있으면 영 적막해서 가야 돼.”



할머니는 열여덟살에 시집온 날부터 백발이 된 오늘까지 지금의 집을 지켰다고 했다. 남편은 40여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이 출가하면서 혼자 된 지가 오래다. 6년 전 몸이 힘들어 평생 짓던 벼농사도 손에서 놓고보니 할머니의 시곗바늘은 더욱 느리게 돌아갔다. 그런 할머니에게 하루 세시간씩, 일주일에 두번 찾아오는 요양보호사는 딸처럼 반가운 손님이라고.



“나한테 잘해요.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내가 힘들어서 모(못)하는 걸 해주이 고맙지요.”



“엄마한테 잘하는 게 당연하지. 어제 잠은 잘 주무셨어요?”



이제 할머니도 돌아왔으니 그간의 안부를 묻고,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살피는 것에서부터 돌봄서비스가 시작됐다. 노인돌봄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는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르신들의 생활에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집안일이다. 몸이 천근만근 같은 어르신들에겐 쓸고 닦는 것도 버거운 노릇이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기에 앞서 요양보호사가 차에서 휴대용 청소기를 꺼내왔다. 하루 두세집씩 돌면서 일하다보니 청소기가 필수품이 됐단다. 이젠 일일 요양보호사가 나설 차례. 청소기를 대신 집어들고 매트리스부터 방 두칸을 구석구석 밀었다. 그리고는 걸레질을 하며 이것저것 물건들을 치우는데 지켜보던 요양보호사가 제지하고 나섰다.



“청소할 때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둬야 해요. 정리한다고 딴 데로 치우면 어르신들은 물건이 없어진 줄 알고 한참을 찾으시거든요.”



초보일꾼 때문에 하마터면 할머니가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죄 찾지 못할 뻔했다. 얼른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부엌으로 나갔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아궁이가 딸린 옛날식 부엌이었다. 싸리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부엌 안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설거지를 하는데, 물을 가득 채워놓은 낡은 도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어린이들은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요강을 시골 어르신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다. 화장실이 재래식이다보니 밤에는 이 요강이 할머니에게 요긴한 단지가 돼줄 터. 내친김에 박박 문질러 씻어놓았다.



다음 할 일은 손빨래. 집에 멀쩡한 세탁기가 있지만 손빨래를 더 신뢰(?)한다는 할머니를 위해 옷가지 몇벌을 손으로 빨았다. 이불처럼 큰 빨래는 요양보호사가 가져가서 빨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빨랫줄에 옷을 탁탁 털어 널고 마당을 둘러보니 할머니가 텃밭에 가꾼 깻잎이 무성했다. 할머니 반찬으로 쓸 깻잎 몇장을 따는데 시기를 놓쳤는지 잎이 영 시들했다. 몸도 땅도 그냥 놀리지 못해, 심은 게 훌쩍 자랐는데도 할머니는 미처 거둘 기력이 없었나 보다.



집안일을 끝내고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니 새소리·바람소리만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가끔 자연을 찾는 도시 사람들이 ‘힐링’이라고 부르는 이 적막이 할머니는 퍽 무료했을 터다.



 





외로움 보듬어주는 말벗 역할도



오후에 찾아간 이 할아버지(80·근덕면)는 김 할머니보다 정정하신 듯했다. 그러나 외로움은 더 깊어 보였다. 그래서인지 노인돌봄종합서비스 제공 기준시간인 월 27·36시간 중 김 할머니는 27시간 서비스를 받는 반면, 이 할아버지는 36시간을 이용하고 있었다. 요양보호사는 하루 세시간씩, 일주일에 세번 할아버지를 찾아온다.



요양보호사에 일일 요양보호사까지 여러 사람으로 집이 북적이자 할아버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함께한 지 5개월밖에 안됐지만 할아버지와 요양보호사는 부녀지간처럼 막역했다. “늘 집이 어질러져 있다”는 요양보호사의 잔소리에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게 대꾸하면서도 얼굴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호박챗국 좀 끼리(끓여) 봐라.”



할아버지는 딸에게 하듯 요양보호사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일상적인 일인 양 요양보호사는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음식을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에는 소질이 없는지라 그동안 청소를 하기로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서랍장 위를 훔치는데 늠름한 청년의 모습이 담긴 액자가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의 손자라고 했다.



“이래저래 사정이 있어가꼬 못 본 지 오래됐지. 보고 싶다 마다. 자석(식)들 다 먹고살기 바쁘니 자주 오기 쉽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땐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고 한다. 전국 팔도를 돌며 송이버섯이나 약초 같은 농산물중개상 일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다 고향인 삼척에 정착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고, 4년 전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혼자가 됐다.



청소를 하다 말고 말벗을 자청하니 할아버지는 이야기보따리를 쉼 없이 풀어놓았다. 1969년 향토예비군이었을 때 받은 낡은 표창장을 보여주며 들려주는 무용담부터 35년간 앓고 있는 당뇨병, 얼마 전 해넣은 틀니 이야기까지 주제도 다양했다. “이렇게 하실 말씀이 많은데 경로당엔 안 가시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들밖에 없는데 어떻게 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잠자리에 든다. 특별히 외출할 일이 없으면 길과 바로 맞닿아 있는 현관문 근처에서 그 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꼬박꼬박 찾아오는 요양보호사가 반가울 수밖에.



“저번에는 일자가 안 맞아서 저 사람(요양보호사)이 닷샌가 안 왔는데 딱 죽을 맛이었어.”



“아부지, 제가 그렇게 좋으시믄 제 말 좀 들으세요. 담배도 그만 피우시고, 당뇨에 안 좋은 사탕도 드시지 마시고!”



할아버지와 요양보호사의 훈훈한 투닥거림을 보며 청소를 마저 하는 도중 방구석에서 여러개의 화투갑을 발견했다.



“심심할 때 혼자 그림 맞추는 게 낙이라.”



혼자 치는 화투가 재밌으면 얼마나 재밌으랴. 쓸쓸하게 화투패를 만지작거리는 할아버지를 보니 요양보호사도 일일 요양보호사도 마음이 동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세사람의 화투판이 벌어졌다. 할아버지는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어린 아이처럼 ‘고도리’ ‘피박’을 외치며 연방 엉덩이를 들썩였다. 돈도 내기도 걸지 않고 맨송맨송하게 끝난 그 짧은 놀이 덕에 할아버지 얼굴엔 오랫동안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꼭 밥을 먹고 가라는 할아버지의 당부에 세사람이 작은 밥상에 둘러앉았다. 호박챗국과 고등어구이·어묵 등 반은 요양보호사가 만들고 반은 큰며느리가 해다 준 반찬이 상에 올랐다. 매일 혼자 먹는 밥이 지겨웠다는 할아버지는 밥 한술, 이야기 한술 나누며 식사를 하는 내내 흐뭇해했다. 밥상을 물린 후엔 당뇨약을 챙겨드렸다. 요양보호사와 함께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해 처방받은 약이다.



설거지를 끝으로 일을 모두 마치고 집을 나섰다. 할아버지에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오늘 시간 보내줘서 참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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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