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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으로 보는 세상] 호박잎의 추억 글의 상세내용
제목 [詩心으로 보는 세상] 호박잎의 추억
부서명 농업기술센터 등록일 2018-10-16 조회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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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농민신문





 


추석을 조금 앞두고 어느 날, 불현듯 제주에 다녀왔다. 일요일 늦은 오후였는데, 지인과 통화하다가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난 올해 여름휴가도 못 갔다. 성수기 지나서 항공료 싸지는 가을에 유럽을 가려 했는데, 떡하니 소송이 걸려 어디로도 못 가.” 그랬더니 그녀가 날 부추겼다.



“언니, 당장 떠나. 어디로든. 언니가 좋아하는 제주도 갔다 와.”



“그럴까? 요즘 재판 때문에 사나워진 머리라도 식혀볼까.”



갑자기 제주도 바람이 불어, 태풍에 떠밀리듯 후다닥 짐을 쌌다. 병원에 있는 엄마가 걸렸지만, 뭐. 하루쯤인데, 별일 있으려고. 동생들도 있는데. 제주에 가서 하루 자고 오겠다고 말하니 동생이 “하루로 되겠어? 이틀은 자야지. 푹 놀다 와.” 역시, 내 동생. 요새 날 제일 걱정하고 챙겨주는 사람은 둘째 동생이다. 어려서는 그렇게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댔는데,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둑어둑한 저녁에 제주에 도착했다. 시장 바닥처럼 북적이는 공항 구내식당에서 맛없는 밥을 먹고 싶지 않아, 호텔로 바로 가서 체크인도 하지 않고 짐만 맡긴 뒤 밖으로 나왔다. 탑동의 뒷골목을 헤매다 허름한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메뉴를 보고 그냥 백반을 시켰는데, 할머니가 푸짐하게 한상 차려 내 앞에 내려놓는다. 삶은 호박잎의 향기를 맡고, 얼마 만인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밀려와, 밥 한공기를 호박잎에 말아 후딱 먹어치웠다.  





원주 할머니가 서울로 올라와 우리와 함께 살며 뜨락이 풍성해지고 식탁이 풍성해졌다. 집에서 기른 싱싱한 푸성귀들. 살짝 데친 호박잎에 싸 먹은 밥은 얼마나 맛있었는지. 찢어진 호박잎은 두개를 겹쳐서 손바닥에 얹었다. 포마이카 상의 한가운데 놓인 둥그런 스테인리스 밥통에서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된장을 얹어 입이 찢어져라 우걱우걱 급하게 허기를 채우던…. 가난한 밥상이지만 할머니가 옆에 있으면 정이 넘쳤다. 부엌에서 무얼 끓여 내놓기가 어려운 무더운 여름날. 아침에 먹다 남은 찬밥에 쌈을 싸 먹거나 삶은 감자와 옥수수로 점심을 때웠다.  



경술국치 무렵에 강원도 인제의 산골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평생 감자와 옥수수를 얼마나 많이 잡수셨을까. 옥수수수염처럼 질기고도 슬픈 할머니의 생애가 나를 울린다. 주기도문을 잘 외는 손녀를 할머니는 기특해했는데, 할머니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내게 무어라 하실까.



한번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베라고 하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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