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농민신문

위기의 국산 밀 현황과 대책 최근 5년 자급률 0.9~1.8% 2017년산 1만8000t 창고에 2018년산도 처리 난항 예상 육성정책엔 구체적 계획 없고 밀 가공·유통 업체 수매 한계 수입 밀과의 큰 가격차도 문제 재고물량 소진방안 마련하고 안정적 소비처 발굴 서둘러야 국산 밀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 밀은 국민 1인당 연간 32㎏을 소비하는 제2의 주식이다. 그럼에도 자급률은 수년째 1%대다. 재고까지 넘쳐난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수년 안에 국내 밀 생산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019년 자급률 0.5%도 어려워=농림축산식품부는 올초 ‘2018~2022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통해 2022년까지 밀 자급률 9.9%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실현 가능한 목표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 밀 자급률은 최근 5년간(2012~2016년) 0.9~1.8%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재고량도 상당하다. 2016년산 재고 1만t은 지난해 주정용으로 겨우 처분했다. 하지만 2017년산 재고 1만8000t은 아직도 소비처를 찾지 못한 채 창고에 보관돼 있다. 업계는 2017년산 재고가 해결되지 않으면 2018년산 밀 처리에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2019년에는 밀 생산량이 급감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요즘이 2019년산 파종시기(10월 중순~11월 중순)이지만, 산지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산 밀을 수매하는 곳 중 하나인 한국우리밀농협의 천익출 조합장은 “재고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올해는 농가들에게 아예 밀 파종을 하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낸 상태”라며 “이대로라면 내년엔 전국적으로 밀 생산량이 2만t을 넘지 못하고, 자급률은 0.5%도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행방안 없는 자급률 목표치=이처럼 국산 밀산업이 위기에 처한 데는 정부의 부실한 정책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그간 정부는 지속적으로 밀 자급률 목표치를 제시해왔다. 2011년엔 2015년까지 밀 자급률 10% 달성을, 2016년에는 2020년까지 5.1% 달성을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구호만 있고 구체적인 달성방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실시한 방안들도 관련 기관들의 업무협약 등 일회성 행사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밀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높은 자급률 목표치 제시는 농민들에겐 밀 재배를 독려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면서 “그런데 정작 키우고 나면 마땅한 판로가 없는 데다 정부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초래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밀산업의 특수성도 있다. 국산 밀은 한국우리밀농협·밀다원·아이쿱생협·우리밀 등 소수의 밀 가공·유통 업체가 매년 전체 생산량의 80%가량을 수매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업체가 소화 가능한 물량 이상으로 생산된 해는 재고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수입 밀과의 가격차는 국산 밀 소비를 약화시키는 주요인이다. 2017년 기준 국산 밀 수매가는 1㎏당 1050원, 수입 밀은 285원으로 3.7배나 차이가 난다.
품종과 품질 문제도 한몫한다. 국산 밀품종은 농촌진흥청이 빵·면·국수용 등 용도별로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지역의 토양·기후 여건에 따라 단백질 함량 등 품질 차이가 크고, 용도별 생산·저장·등급 관리가 미흡해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재고물량 격리 시급=업계 관계자들은 최우선 과제로 재고물량 처리를 꼽고 있다. 2017년산 1만8000t이 해결되지 않으면 2018년산은 물론 향후 생산물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김준규 국산밀산업협회 상임이사는 “현재 밀산업은 기존 수매업체와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다”면서 “주정용·군납 등 어떤 방식으로든 재고물량을 소진할 방안을 정부가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고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향후 밀 생산량 급감과 자급률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공비축제 도입 등 근본 대책을=공공비축제 도입 및 관련 예산 확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앞으로도 과잉생산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밀산업 안정화를 위해 근본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다.
아울러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의원 시절인 2017년 12월 발의한 ‘국산 밀산업 육성법 제정안’이 하루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법은 공공비축제를 비롯한 집단급식소의 국산 밀 우선구매, 국산 밀 사용 음식점에 대한 인증제 시행 등을 골자로 한다.
또 수입 밀과의 가격 차이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안정적인 소비처 발굴 등 수요 확대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농식품부도 이러한 업계 요구를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하지만 올해 파종이 끝나기 전까지는 대책 발표가 어려울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재고물량의 용처를 찾기 위해 품위와 단백질 함량 등 품질검사를 하고 있다”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처리방안을 업계와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산 밀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면서 “생산·수요 측면에서 안정화 방안 및 공공비축제 도입과 관련한 논의 결과를 12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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