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농민신문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나도 그렇다.
내 나이가 많아지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영원한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에서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을 다룬 다큐프로그램들을 즐겨 본다.
< 100세 개인전>이란 다큐멘터리는 카르멘 에레라란 화가의 삶과 예술을 다룬 작품이다. 1915년생으로 104세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인 미니멀리즘을 고수했다.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대형 미술관의 전시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89세에 처음 그림이 팔렸고 100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은 미국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고 작품도 판매하면서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다.
< 아이리스>란 작품은 현재 미국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 아이리스 아펠을 조명했다. 98세인 그는 인테리어 전문가이지만 평생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독특한 액세서리를 놀라운 감각으로 연출해 패션계에서 더 명성을 누리고 있다. 고가의 보석이 아니라 벼룩시장에서 산 5달러짜리 팔찌, 아프리카 스타일의 목걸이 등으로 온몸을 휘감은 그는 패션 전공 학생들에게 강의도 한다. 100세에 가까운 지금도 액세서리를 쇼핑하고 패션화보에 모델로 등장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자랑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02세에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김병기 화백, 99세에도 매월 전국을 누비며 10여차례 강의를 하고 매주 칼럼을 쓰는 철학자 김형석 교수, 92세의 현역 방송인 송해 선생, 역시 92세에도 매일 7시간씩 일을 하는 패션디자이너 노라노 선생 등이 100세 시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또 네이버에서 ‘지식인 할아버지’로 불리는 84세의 전직 치과의사 조광현 선생은 10여년간 3만7978개(2018년 12월15일 기준)의 질문에 답을 했다. 전문적이고 현학적인 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산타 할아버지 나이가 몇살인가요”란 질문엔 “아빠와 동갑”이라고 답하고, “여자친구와 예쁜 사랑을 하고 싶은데 어떡할까요”란 물음엔 “미장원에 다녀오라”고 답하며 열렬한 공감을 얻었다.
영원한 현역들의 공통점은 성공이나 행복에 대한 욕망과 집착 대신, 또 남들의 평가에 상관없이 자신을 믿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왔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면서 비록 인정을 받지 못해도 운명과 세월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이는 슬픔이거나 걸림돌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은 탑처럼 혹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점점 깊어지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나이의 힘은 그저 나이만 먹는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걸림돌이건 디딤돌이건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디뎌와야 생긴다. 또박또박 걸으면서 생기는 근육의 힘처럼 나도 나이의 힘을 만들어야겠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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