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례원리에서 봄배추농사를 짓는 유병조씨가 비닐하우스에 심긴 봄배추를 폐기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충남 예산 산지폐기 현장
채소가격안정제 참여 37농가 1790t 자율감축작업 돌입
폐기량 절반만 값 보전에도 참여농가들 “최악은 피해”
대부분 농민 참여 안해 문제 물량 어떻게 처리할지 ‘답답’
지역농협·농가 참여 확대 위해 사업비 부담비율 조정 등 필요
18일 오후 3시께, 봄배추 주산지인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례원리. 유병조씨(65)의 비닐하우스 안에서 트랙터가 바삐 움직였다. 495㎡(150평)의 비닐하우스에 가지런히 심긴 봄배추가 이달말 수확을 앞두고 로터리날에 의해 갈기갈기 짓이겨지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유씨는 “죽어라 농사지어서 로터리 치는데 가슴이 찢어지네유. 하지만 마음은 아파도 현실이 이런디 어떡해유”라며 “그나마 4동(600평)에서 150만원은 건져 다행이라 여기고 있슈”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배추 10㎏ 상품 한망 경락값은 2600원 수준이었다. 평년 같은 때 가격의 40% 정도에 불과했다. 겨울배추 저장물량이 계속해서 출하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봄배추 수급안정을 위한 면적조절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예산농협은 충남봄배추주산지협의체의 결정에 따라 17일 봄배추 채소가격안정제에 참여한 37농가와 자율감축 결의대회를 갖고 이날부터 산지폐기에 들어갔다.
주산지협의체가 확정한 전체 폐기물량은 1790t. 채소가격안정제에 참여한 농가들의 하우스 398동(5만9670평)에서 한동당 450망(한평당 3망)을 예상생산량으로 추정해 산출한 양이다. 이 가운데 50%인 895t에는 한망당 보전금액 2606원의 80%(정식 후 50일 기준 적용)인 2085원이 면적조절 보전기준으로 적용됐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할 때 한동당 93만8250원(450망×2085원)이 나오지만, 여기서 자부담 20%(18만7650원)를 빼면 75만600원이 지원되는 것이다. 하지만 폐기물량의 절반만 보전되기에 농가 입장에선 한동당 37만5300원을 받고 봄배추 폐기에 참여하는 셈이다.
상당수 참여농가들은 유씨처럼 ‘한푼도 못 건질 상황에서 최악은 피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예년과 달리 상인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데다 현재 바닥을 기고 있는 겨울배추값이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농가는 “이런 제도마저 없었으면 어쩔 수 없이 봄배추를 모두 갈아엎거나 썩혀버려 빈털터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채소가격안정제에 참여하지 않는 대부분의 농가들이다. 현지 농민들에 따르면 봄배추를 심은 비닐하우스가 예산읍·신암면·오가면에만 2000여동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병우 신암면 탄중리하우스작목반장(64)은 “우리가 무턱대고 배추를 많이 심은 게 아니다. 오히려 재배면적을 예년보다 30~40% 줄였다”며 “그런데도 생산량이 한동당 600망에 이를 정도로 작황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t 트럭 한대 분량(950망 기준)을 가락시장에 출하하려면 작업비·운송비·포장비 등으로 대략 150만원이 들어간다”며 “많은 농가가 배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답답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채소가격안정제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역농협과 농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늘도록 사업비 부담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종진 예산농협 조합장은 “일부 조합원에 지원이 국한되는 데다 어려운 경영상황 탓에 지역농협의 참여도도 떨어진다”며 “사업비 10%를 면제해주는 대신 지역농협이 실무작업을 전담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병우 반장은 “농가 자부담(20%)이 너무 높은 데다 생산비에도 턱없이 부족한 돈을 주고 폐기하라는 건 문제가 많다”며 “작물별 최소생산비를 보장해주는 수준으로 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