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린성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최해연씨. 어느덧 15년차 농사꾼이 된 그가 열매솎기 작업을 하고 있다.
다문화 열전 (2)다문화 새댁서 억대 농부 된 최해연씨
결혼 직후 남편 따라 농사 시작
처음 하는 일에 어려움 컸지만 문경사과대학서 공부하며 극복
주민과 어울리며 한국생활 적응 여성농민단체 활동도 적극 나서
5월말,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한 사과농장에서는 열매솎기(적과) 작업이 한창이었다.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농민들은 따가운 햇볕 아래서 구슬땀을 쏟고 있었다.
“아지매, 점심 먹고 하이소.”
농장주 최해연씨(39)가 함께 작업하던 이들을 불러들였다. 농장 한쪽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이는 모두 8명. 모두 지역주민들로 이날은 최해연씨 농장의 열매솎기를 위해 모였다.
“사과농장만 1만6528㎡(5000평) 정도 돼요. 평소에는 남편과 둘이서 농장을 관리하지만 열매솎기, 봉지 씌우기, 수확 같은 작업은 손이 많이 가서 두사람으로는 역부족이죠. 결혼하고 처음엔 농장일 뿐 아니라 마을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다들 가족같이 지내요. 보통 열매솎기만 열흘 정도 하는데 오늘이 3일째예요.”
중국 지린성 출신의 해연씨는 15년 전 결혼을 하면서 한국에 왔다. 화물운송업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농사를 짓겠다고 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두사람 다 농사에 관한 지식이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해연씨에게는 지린성과 다른 환경도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한국어를 할 줄 알아 언어 소통이 안돼 겪는 어려움은 없었지만, 아는 사람 한명 없는 시골에 오니 힘든 게 한둘이 아니었어요. 사과농사도 어렵고 문화도 달라 적응이 쉽지 않았죠.”
영농기술을 배우는 데는 문경시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1년 과정의 ‘문경사과대학’이 큰 도움을 줬다. 야간교육으로 진행돼 농사를 짓는 데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많은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하는 한국문화체험이나 교육에는 한번도 참여해보지 못했어요. 농장일 하기도 바쁜데 그런 곳에 찾아갈 시간이 있어야죠.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면 한국 문화를 빨리 배워야 하지만, 그런 부분은 좀 아쉬웠어요.”
고민하던 해연씨는 ‘실전’에서 부딪치기로 했다. 마을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부대껴야 본인을 받아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농장일이 없는 겨울철이 되면 동네 할머니들 집에 찾아가 몇시간씩 화투를 쳤어요. 옛날이야기 좀 해달라고 억지로 조르기도 하고요. 한국에 시집을 왔으니 여기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마음이었죠. 사실 한국이 아니라 어디서 시작하더라도 전혀 다른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결혼해서 산다는 것, 낯설고 물 선 곳에 와서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여기서 적응 못하면 다른 곳에 가서도 마찬가지다’라는 생각을 하니 자꾸 사람들을 만나야겠더라고요.”
그렇게 이 악물고 한국 생활을 적응해낸 해연씨. 지금은 3만3000㎡(1만평)가 넘는 땅을 소유하고 연간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억대 농부’에 이름을 올렸다. 생활개선회 등 여성농민단체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이라고 다르게 보는 시선이 제일 힘들었는데, 성실하게 일하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시곤 주변에서도 많이 인정해주시더라고요. 농촌에서 생활하는 결혼이민여성들이 바깥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