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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급식, 농번기 농민들 ‘든든한 한끼’ 책임지다 글의 상세내용
제목 마을공동급식, 농번기 농민들 ‘든든한 한끼’ 책임지다
부서명 농업기술센터 등록일 2019-06-21 조회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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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농민신문





마을어르신들과 함께 오징어초무침에 들어갈 미나리를 다듬고 있다.




[현장 속으로, 기자체험 25시] 농민신문 기자가 간다 (20)일일 보조 조리원


영농철 지자체 지원받아 직접 장보고 식재료 손질까지


3명이서 20인분 음식 만들어 주민 반찬 덕에 상차림 더욱 풍성


낮 12시, 이장님이 방송으로 알리자 어르신들 밭일 마치고 마을회관으로


삼삼오오 앉아 맛난 점심에 이야기꽃 피우며 농사 피로 풀어


식사 후 설거지 끝내니 칭찬 말씀도


“공동급식, 마을 활력소 역할 톡톡”

 




‘밥해 먹기 참 어렵다.’



1인가구로 살아가는 기자에게 있어 가장 큰 고충은 집에서 한끼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다. 30년 넘게 ‘엄마표 집밥’에 의존해왔으니 라면 이외의 요리를 하려면 주방에 전운이 감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젊은이들도 이렇게 힘든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고된 농사일 중간에 밥상을 손수 차리는 게 가능할까. 문득 농번기 농촌에서의 점심이 궁금해졌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이른바 ‘마을공동급식 지원제도’가 농촌어르신의 어깨를 가볍게 하고 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본다. 마을주민 가운데 지정된 사람이 반찬과 밥을 준비하고, 주민이 한데 모여 점심을 먹는 이 제도가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11일 올해 상반기 사업에 참여한 전남 영암군 시종면 신흥리 세원마을을 찾아 일일 보조 조리원이 돼보기로 했다.

 




기자가 오징어와 미나리를 주재료로 하는 초무침을 만들고 있다.







3명이 20인분 점심을 준비하다



오전 8시30분 시종면사무소. 세원마을 이장 고숙희씨(45)와 조리원인 부녀회장 민필례씨(76)가 기자를 맞았다. 머슴처럼 일해보겠노라고 포부를 밝히자 민 부녀회장이 대뜸 “손이 고운 걸 본께 일을 많이 안해본 것 같은디…”라며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살짝 주눅이 들 찰나 고 이장으로부터 식수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를 듣게 되자 머리카락까지 주뼛 섰다. “기자님, 달랑 우리 셋이서 20인분 넘게 점심 만들어야 하니께 언능 장부터 보자고요.”



영암은 전남에서 ‘마을공동급식’이 가장 활발한 지자체로 꼽힌다. 사업을 신청한 마을만도 상·하반기를 합쳐 319곳에 이른다. 기자와 동행한 신태호 군 친환경농업과 주무관은 “신청한 마을 모두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자체 군비 3억6000만원을 포함해 모두 6억3800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20명 정도로 공동급식이 가능한 마을이라면 조리원 1명의 인건비 4만원과 부식비 4만원(1인당 2000원×20명)이 하루 마을 점심값으로 지원된다는 설명. 25일간 공동급식을 하니 200만원 한도에서 마을주민의 농번기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오늘 급하게 결성한 ‘세원마을 공동급식 삼총사’는 가까운 월출산농협 하나로마트 시종점부터 들렀다. 고 이장의 수첩을 살짝 훔쳐보니 돼지고기·미나리·콩나물·바지락·오징어 등 사야 할 품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터라 오늘의 점심메뉴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육볶음과 바지락된장찌개, 오징어와 미나리가 들어간 초무침이 조리원의 손을 거쳐 탄생한단다.



‘고기반찬에다가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초무침이라니 횡재했네. 근데 예산이 빠듯할 텐데 괜찮으려나….’



기자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고 이장이 읽기라도 한 걸까. “멀리서 손님이 왔는디 반찬에 신경을 더 써야지요. 대신 맛있는 밥 얻어묵을라면 우리 부녀회장님 말 잘 듣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쇼잉~.”



 




음식준비가 막바지에 이르자 기자가 상에 반찬을 놓고 있다.





앉아 있을 틈이 없네…고양이 손이라도 빌릴까



장을 본 후 오전 9시30분이 다 돼서야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기자에게 주어진 첫번째 임무는 미나리 다듬기. 평소 미나리를 다듬어봤어야지. 일하는 속도도, 모양새도 안 나니 삼총사를 가장 먼저 도우러 온 가평댁 소영자 할머니(77)의 목소리가 커진다. “잔 잎사귀하고 뿌리 부분을 야물딱지게 뜯어야써. 요렇게 해찰부리면 점심은커녕 저녁때도 놓치겄어.”



다듬은 미나리를 회관 밖 수돗가에서 서너번 반복해 씻고 나서 허리를 펴려고 했지만 바구니에 가득 담긴 콩나물·바지락이 목욕재계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분 이상을 쪼그려 앉아 식재료를 씻으려니 허리가 접힌 듯 아팠다. 애꿎은 손목시계만 쳐다보면 뭐하나.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니 시계가 고장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기자 양반, 어여 들어와 초무침 만드는 것 좀 도와줘.”



점심때가 다가올수록 음식을 준비하는 손이 부족해졌다. 부녀회장의 작업지시에 따라 오징어초무침을 만드는 동안 이장은 바지락된장찌개를 끓이고, 돼지고기를 양념에 재어놓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이고! 제일 중요한 밥을 안 안쳤네.” 민 부녀회장의 외침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랴부랴 쌀 씻기에 나섰다. 평소 습관대로 쌀을 씻자 가평댁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렇게 힘아리 없이 씻으면 안되제. 박박 씻어줘야 불순물이 떨어져나가지 않것어.”



다행히도 나경숙 할머니(66), 김순례 할머니(69)가 이른 시간 회관을 찾아 일손을 보태면서 겨우 인력난이 해소됐다. 여기에다 상추·김치 등을 가져다주시는 고운 심성의 주민 덕에 상차림이 더욱 풍성해질 터였다.



상을 놓기 전 주방·거실·안방 바닥을 청소하는 일도 기자의 몫이 됐다. 20명 남짓 앉을 자리를 쓸고 닦고 하다보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여러개의 상에 밥·반찬·수저를 놓고 나니 시침이 딱 12시를 가리켰다. 이때 고 이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가가호호 현관문을 두드렸다. “아아! 전에 공지한 대로 오늘 마을공동급식이 있는 날이오니 마을주민분께서는 잠시 일손을 놓고 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고숙희 이장의 “점심을 먹으러 오시라”는 방송을 듣고 마을회관으로 찾아온 어르신 20명이 맛있게 점심을 드시고 있다.





“공동급식, 마을 활기의 원동력”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회관은 오전 밭일을 마치고 ‘밥 한숟갈 뜨러 온’ 어르신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과 함께 앉아 달짝지근한 제육볶음이며, 얼큰한 된장찌개며, 알싸한 초무침을 입에 넣으려니 일 못하는 머슴이 분에 넘치는 새경을 받는 느낌이었다.



정성스레 만든 점심은 이야기꽃을 피워내는 자양분임이 틀림없는 모양이다. 건넛마을 할아버지가 농작물에 농약을 잘못 뿌린 이야기에서부터 김씨네 할머니가 병원신세를 진 까닭까지, 다양한 주제가 밥상을 타고 넘나드니 말이다.



군청 직원이 사다놓은 수박을 후식 삼아 한입 베어 문 순간 옆에 있던 한 할머니가 기자에게 농을 던지자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담장 밖을 넘었다. “총각이람서. 과년한 딸 하나 있는디 생각있음 얘기혀. 내가 포대에 담아서 공짜로 줘버릴텐께. 근디 고것이 못난 나를 꼭 닮아부럿는디 어찌야쓰꼬.”



전쟁 같은 상차림 후에는 반드시 설거지거리가 잔해로 나오는 법. 막내인 보조 조리원이 가벼운 엉덩이를 들어 싱크대로 향했다. 끝도 없이 나오는 그릇과 접시를 꼼꼼히 씻는 기자의 모습을 보고 칭찬에 인색한 부녀회장님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설거지 하나는 기똥차불구만. 그 정도 실력이면 마누라한테 사랑받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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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