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랭지무값이 지난해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함에 따라 최근 강원 곳곳에서 산지폐기를 하고 있다. 평창군 진부면의 한 고랭지무 재배농민이 무 윗동을 예초기로 잘라낸 후 무밭 전체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고랭지 농산물 가격폭락…강원 평창군 진부면 일대 가보니
봄무 저장물량 출하 이어져 지난해 값 대비 4분의 1 수준
생산비도 못 건져 수확 포기 배추·양배추 값 하락 마찬가지
생산비 보장제도 마련 등 필요
정부·강원도, 무값 안정 위해 내달까지 9000여t 폐기 결정
“내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면서 뼈 빠지게 농사지어온 무들인데 이제와서 내 손으로 갈아엎고 있으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네요.”
최근 찾은 고랭지무 주산지인 강원 평창군 진부면 일대. 출하로 한창 바빠야 할 시기지만 무밭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윗동이 잘린 채 썩어가는 무들이 곳곳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트랙터로 갈아엎은 무밭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마평리에서 1만9834㎡(6000평) 규모로 무농사를 짓는 이웅재씨(52·한국농업경영인 평창군연합회장)는 “시장에 내놔봤자 생산비도 못 건지는데 어쩌겠느냐”면서 “가슴이 미어지지만 산지폐기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멀칭비닐을 벗기고 무 윗동을 예초기로 쳐내는 등 폐기작업에도 사람을 구해야 했다”며 “전체 밭면적 중 일부인 4958㎡(1500평)를 갈아엎는 데 50만원의 인건비를 별도로 지불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올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고랭지무값은 20㎏들이 상품 한상자당 6000원대에 불과해 지난해(2만3000원대) 가격 대비 4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엔 무 20㎏들이 하품 한상자가 1000원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수확할 때 발생하는 작업비와 상자값·운송비·수수료 등 유통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감안할 경우 출하하면 할수록 손해만 보는 것이다. 결국 산지폐기에 나서는 농가가 늘고 있고, 여기에 들어간 인건비와 그동안 투입된 영농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됐다.
밭에 나뒹구는 무만 바라보면 가슴이 아프다는 이씨는 “앞으로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 회의감이 심하게 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웃마을에서 5만2892㎡(1만6000평)의 부지에 무농사를 짓는 김부윤씨(67·간평리)도 “최근 1만6528㎡(5000평)에서 수확한 물량을 출하했는데 인건비조차 충당하지 못해 남은 물량은 출하를 포기했다”며 “전국 곳곳의 도매시장을 다녀봤지만 소용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봄무 저장물량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가격폭락이 발생했다”면서 “정부가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이곳 농민들이 받는 타격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인근에서 만난 농민 전모씨(56·동산리)도 “국내산 무·배추의 소비부진과 중국산 김치 수입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격하락까지 겹쳐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주한 진부농협 조합장은 “올해 고랭지무 파종량이 많기도 했지만 봄 저장무들이 아직까지도 도매시장에 출하되면서 무값이 폭락했다”며 “현재 진부지역 무 재배농가에서만 102.4㏊(31만평) 정도 폐기처분 신청이 들어왔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랭지 배추와 양배추의 가격하락도 심상찮다. 고랭지배추는 가락시장에서 10㎏ 상품 한망당 6000~7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평년보다 25%가량 낮은 수준이다. 양배추 역시 8㎏들이 상품 한망 기준으로 평년보다 700원가량 떨어진 4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웅재씨는 “현재 고랭지양배추는 산지거래 자체가 실종된 상황”이라며 “농민들에게 기본적인 농산물 생산비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함원호 대관령농협 조합장은 “지금 고랭지 농산물의 전체적인 시세는 정상적인 수취값과 한참 거리가 먼 실정”이라며 “농산물값이 오를 때 정부가 수급안정대책을 내놓듯이 지금처럼 농산물값이 내릴 때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와 강원도는 다음달까지 무 9000여t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도 관계자는 “가격하락으로 농민들의 고충이 커진 만큼 농협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가격안정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