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시 금호읍에 있는 한 복숭아농가가 올해 심식나방·복숭아순나방 피해로 과실을 폐기한 모습(왼쪽).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시행 뒤 수확 7~14일 전부터는 뿌릴 약제가 없어 해충의 공격이 집중됐다. 같은 지역의 상당수 배농가도 수확 20여일 전부터 해충을 막을 방법이 없어 폐기에 나섰다(오른쪽).
PLS 전면 시행 첫해, 현장 실태와 과제는
심식나방 등 피해 크지만 쓸 수 있는 약제 부족하고
잔류농약 기준 엄격해져 과실 수확철엔 살포 못해
인근 농가서 뿌린 농약 등 ‘비의도적 유입’ 대책 없어 농약분쟁위 설립 지지부진
친환경자재 적극 지원하고 정부 차원 영농피해 보전을 비산 적은 농약도 개발해야
올해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가 전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1~8월 농산물 잔류농약 부적합률은 1.3%다. 당초에는 부적합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 1.4%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겉으로 보면 PLS 시행에 따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그럴까?
PLS 시행 첫해를 보내고 있는 농민들은 “농약 부적합률이 문제없이 나온 건 정상적으로 생산·출하된 농산물만을 기준으로 측정했기 때문”이라며 “PLS 시행으로 병충해 방제가 어려워져 정상적인 수확을 못한 현실은 가려져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사용 가능한 농약의 가짓수 부족, 비의도적인 농약 유입 등 PLS 시행 전부터 제기됐던 우려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지적이다.
◆방제 어렵고 수확량 줄어=복숭아·포도 등을 재배하는 농민들 중 PLS 시행에 따른 수확량 감소를 호소하는 농민이 적지 않다. 경북 영천, 충북 영동 등 복숭아 주산지의 상당수 농가는 정상적으로 생산한 과실이 지난해의 절반에 그쳤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이달 중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실태와 바람직한 정책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과수 재배농민들은 PLS 시행 후 과원 방제의 어려움을 전달하고, 영농피해를 보전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이 토론회는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경북 영천·청도)과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공동주최했다.
올해 복숭아 등 과수 재배농민들이 겪은 어려움은 2가지로 요약된다. ‘사용 가능한 농약 가짓수 부족’과 ‘여러 작목·품종 재배에 따른 농약 유입’ 문제다.
복숭아 주산지에선 ‘심식나방’과 ‘복숭아순나방’ 피해가 컸다고 말한다. 두 해충 모두 복숭아에 작은 구멍을 내고 침투해 과실을 썩게 한다. 영동에서 복숭아농사를 짓는 현정호씨(55)는 “지난해까지 쓰던 효과 좋은 살충제 <뚝심> 등 5~6종을 올해부터 쓸 수 없게 됐다”며 “지역농가의 60~70%가 초기 방제에 실패해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현씨도 지난해 복숭아 7500상자(4.5㎏ 기준)를 생산했으나 올해는 3000상자를 수확하는 데 그쳤다.
잔류농약 기준이 엄격해져 수확 7~14일 전부터 농약 살포를 아예 못했다는 점도 과수농가들을 곤혹스럽게 한 요인이다. 수확 전에는 과실의 당도가 올라 해충에 더 취약해지는데, 올해는 농약 가짓수가 줄고 잔류기준이 강화돼 방제를 못한 것이다. 정대원 한농연 영천시연합회장은 “두 해충이 복숭아 과실에 씌워놓은 봉지까지 뚫었을 정도”라며 “지역 복숭아농가 50% 이상이 이런 피해를 봤는데, 내년에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영천지역의 많은 배농가도 수확 20여일 전부터 뿌릴 약제가 마땅히 없어 심식나방 피해를 크게 본 상황이다.
서로 다른 품종과 작목을 재배할 때 농약이 의도치 않게 유입될 우려도 여전하다. 일례로 복숭아는 일시에 수확·저장을 할 수 없어 한 과원에 10여가지 품종을 섞어 심는다. 조생종·만생종을 같이 심은 경우 조생종 수확기에 만생종에 뿌린 농약이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영천의 복숭아 재배농민 이진우씨(51)는 “조생종·만생종을 한줄씩 번갈아 심었다”며 “고성능분무기(SS기)를 사용하면 농약이 사방으로 흩날릴까 걱정돼 특별히 주의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없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주변의 포도·사과 등을 키우는 과원에서 농약이 의도치 않게 유입돼도 현재로선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비의도적인 농약 유입문제를 중재하는 ‘농약분쟁위원회’ 설립을 논의 중이지만 뚜렷한 진척은 없다.
◆당장 내년 농사 걱정=농민들은 정부가 PLS를 미흡하게 준비한 데 따른 영농피해를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약 부족을 보완할 친환경약제 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다. 현정호씨는 “해충의 밀도 자체를 낮추면 농약 사용량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며 “성페로몬트랩(교미교란제)처럼 해충 발생을 줄여줄 농자재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대원 연합회장은 “탄저병 발생을 낮추는 토양피복용 필름 등 다양한 농자재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잔류기간이 짧고 비산이 적게 되는 농약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