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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농사 섬농민] 외딴 섬에 새긴 황금빛 지평선, 풍요를 가져오다 글의 상세내용
제목 [섬농사 섬농민] 외딴 섬에 새긴 황금빛 지평선, 풍요를 가져오다
부서명 농업기술센터 등록일 2019-10-30 조회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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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농민신문





백령도의 간척지. 여느 육지 못지않게 넓은 평 야가 펼쳐진다.




섬농사 섬농민 (1)인천 옹진 백령도(상)


식량증산 위한 274만㎡ 간척지 조성 1991년 첫삽…2006년 농사 본격화


기존 다랑논과 전혀 다른 농사법 도입 쟁기·파내박 대신 트랙터·수로 등장


예전에는 구하기 어려워 귀했던 쌀 이젠 양보다 질 추구…시대 변화 체감

 




‘섬’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바다다. 바다가 없으면 섬이 없으니 그렇다. 섬 사람들은 다 물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겠거니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섬에도 농업·농민이 있다. 땅 한자락만 있어도 밭을 일구고 논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그래서일까. 섬에서도 바다에 나가기보다 땅을 일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연이 만든 한계와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에 육지의 농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띠지만, 우리 농업이라는 큰 화폭의 한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양태를 가진 섬농사.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번째는 인천 옹진군 백령면, 백령도다.



 




인천 옹진 백령도 간척지에서 익고 있는 벼. 일 반적인 섬과 달리 백령도 농업의 주품목은 벼다.





가을이 한창 익어가는 10월 중순 어느날, 백령도의 하늘은 파랗고 땅은 누랬다. 누런 땅은 논이었다. 바둑판처럼 잘 정비된 논이 줄지어 지평선까지 이어졌다. 옹진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섬에 논이 만드는 지평선이라니.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눈에 들어오는 바다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릴 뻔했다.



“백령도 농업의 주작목은 벼입니다. 180여농가가 연간 40㎏짜리 조곡을 10만가마 정도 생산해요. 1등급 수매값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67억원가량 됩니다. 적지 않은 액수죠.”



박완규 백령농협 전무는 이렇게 숫자로 백령도 농업을 설명했다. 섬이지만 육지의 어지간한 산골 군(郡) 못지 않은 벼농사 규모를 자랑한다고. 감히 ‘평야’라 이름 붙일 만한 광활한 논이 백령도에도 있다고 소개했다.



박 전무가 평야라 지칭한 곳은 북포리·진촌리 일대에 있는 간척지다. 식량증산이 보국이라는 지난 시대의 구호가 이곳 서해 서북단 끝 섬까지 와닿은 것이었다.



“20년도 더 됐지 아마? 식량자급한다고 정부에서 둑을 쌓고 물을 막아서 간척지를 만들었어. 한 10년 동안 소금기 빼고 주민들에게 땅을 불하해서 농사를 짓게 했지.”



농민 최남희씨(71)가 기억하는 간척사업은 1991년 농업기반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가 시작했던 사업이다. 백령도 남서쪽 해안은 바닷물이 섬 중앙까지 들어오는 깊숙한 만이었다. 그 입구에 방조제를 쌓고 안쪽을 매립해 농지를 만든 것이다. 그 규모가 모두 274만㎡(약 80만평)에 달한다.



“그 전에는 산 밑으로 다랑논이 있었지. 그때는 논이 커봤자 500평(1652㎡)이고 대개 100평(330㎡), 50평(165㎡) 그랬어요. 논 3000평(9900㎡)만 있으면 부자라고 했죠. 가물면 가로세로 2m 정도의 물웅덩이를 파서 파내박(긴 막대기에 바가지를 매단 기구)으로 물을 퍼올려 논에 물을 대고 그랬어요. 논이 워낙 작으니까 그걸로도 충분했지. 간척하고 지금은 논바닥 하나가 3000평이나 돼요. 1만~2만평(3만3000~6만6000㎡)씩 논농사 짓는 사람도 적지 않고. 배 안타고 농사만 짓는 사람도 많아. 나도 옛날에는 까나리 조업을 했었는데 그만두고 농사만 지어요.”



잘 정리된 ‘평야’에서 백령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땅이 바뀌자 섬 농민들의 농사법도 달라졌다. 호리(소 한마리로 끄는 쟁기)로 갈던 논은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고, 파내박으로 물을 대는 대신 평야 한가운데 길게 흐르는 내를 만들고 수로를 내서 논으로 물을 흐르게 했다.



“어렸을 때 봄이면 호리를 매고 논 가는 소 등에 타고는 했어요. 소가 느릿느릿 논을 빙빙 도는데 그 등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잠이 솔솔 오는 거라. 졸다가 논바닥에 콱 떨어지고 그랬어요. 요즘에는 논이 저렇게 크고 평평하고 잘 정비돼 있으니까 다 기계로 하지. 어지간한 농가에는 트랙터·이앙기·콤바인까지 다 있어요. 다 기계로 농사지어요.”



임익봉씨(64)가 기억하는 그 시절에는 논이 작으니 소출도 적어 쌀이 귀했었다. 옛날에는 육지라고 다르지 않았겠지만, 아침에 배 타면 저녁나절에나 섬에 도착하던 시절이니 육지에서 쌀을 들여오기도 쉽지 않았다. 그만큼 백령도에서 쌀은 육지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여기 두무진 포구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거든. 우리 아버지가 젊어서는 두무진에서 홍어를 잡아다가 배에 싣고 전라도 나주 영산포까지 가서 쌀을 팔아 오셨어요. 거기 갔다 오는 데 일주일이 걸렸어. 그러니 쌀이 얼마나 귀했겠어요. 지금? 지금이야 흔하지. 너무 흔해서 탈이지.”



섬 풍경은 물론 섬 농민의 삶까지 바꿔버린 백령도의 논. 이즈음엔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서해5도 특별법에 따라 백령도에서 수확한 벼 전량을 정부에서 수매해줬기 때문에 농민들은 대부분 소출이 많은 <새누리>를 재배해왔다. 하지만 농민들은 앞으로 소출은 적어도 품질이 좋은 품종으로 바꿀 계획이다.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시대의 변화를 따른 것이다. 이후 백령도의 농업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알 수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논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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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