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다가왔다. 올해는 유례없는 가을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개시도 하기 전에 수급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지난해만 해도 ‘발에 채였던’ 김장용 가을배추·가을무가 올해는 한포기, 한상자 전부 ‘옥동자’여서다. 일부 산지와 유통가에선 ‘농산물 귀한 줄 알게 하고, 값 하락의 긴 사슬을 끊었다’는 반가움도 묻어나지만, 대체적으로는 생산량이 크게 줄어 전체 농가소득은 그저 그럴 것이라는 아쉬움이 적잖다. 수확이 임박한 충남지역의 배추밭, 전북지역의 무밭을 10월28일 동시에 둘러봤다. 마침 이날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장채소 수급안정대책’을 내놨다.
뿌리혹병에 걸려 모양이 기형적으로 변한 무. 생육도 더딜 뿐 아니라 출하가 불가능하다.
전북 부안 무밭
물빠짐 나쁜 평지, 감모율 높아 출하 포기…헐값에 밭 넘겨
가락시장 다발무 최근 시세 지난해 견줘 약 50% 상승
정부, 비축물량 4000t 방출 조기출하 유도…공급량 늘릴 것
“지역 내에서도 무밭마다 감모율 차이가 큽니다. 심각한 곳은 절반, 좋은 곳도 20% 정도예요.”
전북 부안에서 만난 농민 공선택씨(50·줄포면 장동리)는 “잇따른 태풍에 10월 초순까지 비가 잦아 뿌리혹병과 검은뿌리썩음병 발생이 늘어난 탓”이라며 “봄무 시세하락에 이어 가을무까지 생육이 부진해 농가들의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3만3057㎡(1만평) 규모로 무농사를 짓는 이정식씨(47·보안면 남포리) 역시 “물빠짐이 좋은 밭은 생육상태가 나쁘지 않다”면서도 “내 밭은 대부분 평지에 있어 무 밑동이 썩어버린 게 절반”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출하작업은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라 생산비도 못 건지는 수준에 산지유통인에게 밭을 넘겼다”고 덧붙였다.
이 지역은 전북 고창, 전남 나주·무안·영암과 더불어 전라권의 가을무 핵심산지로 꼽힌다. 부안 일대의 가을무 재배면적만 132㏊(약 40만평)에 이른다. 8월말 일찍 아주심기(정식)한 밭은 벌써 수확에 들어갔다. 늦어도 11월말까지는 출하작업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박선정 남부안농협 상무는 “농협이 계약재배한 47㏊(약 14만평)는 평균 감모율이 20% 정도로 피해가 덜하다”며 “최근 기온이 떨어지면서 막바지 생육속도가 빨라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라권의 다른 지역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산지 이야기를 종합하면 김장철 출하량이 예년보다 최소 20%는 줄 것으로 보인다. 산지유통인 박장구씨(66)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뿌리혹병”이라며 “태풍 때 비바람에 들려 제대로 크지 못한 무가 꽤 많다”고 전했다.
그나마 충청권은 작황이 양호한 편이다. 충남 당진·서산의 한 산지유통인은 “이쪽 밭들은 평균 감모율을 10% 이내로 보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선 다발무 8㎏들이 상품 한단(4~5개)이 42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2800원대보단 50% 가까이 오른 값이다. 김장철엔 무청이 달린 다발무의 거래가 전체 무 거래물량의 80%를 웃돈다.
김명배 대아청과 기획팀장은 “성수기로 접어들면 가락시장에서만 하루 평균 1000t 넘게 무 거래가 이뤄진다”며 “출하자와 협의해 물량확보에 공을 들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지에서 저장창고로 들어가는 양이 얼마나 될지가 김장철 시세의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0월28일 발표한 ‘김장채소 수급안정대책’에서 가을무 생산량을 평년보다 18% 감소한 38만t으로 내다봤다. 성수기 때 비축물량 4000t을 풀고 채소가격안정제 활용과 조기출하 유도로 공급량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