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전남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의 벼 수매현장에서 이재면 영암낭주농협 조합장(오른쪽 두번째)과 벼농가들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관(맨 오른쪽)이 벼 상태를 검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전국 벼 수매현장 가보니
전국 곳곳서 활발하게 진행 벼농가들 “가격 상승 바람”
비·태풍 등 영향 작황 저조 특등 적고 2등급 비율 높아
피해벼 혼입 등 경계 목소리 정부 재고미 방출 우려도 솔솔
“정부가 발 빠르게 태풍피해벼를 수매해준다고 해서 큰 짐을 덜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찍 이곳을 찾았습니다.”
14일 전남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의 벼 수매현장. 오전 8시30분부터 나와 수매에 응했다는 임상순씨(62·용산리)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이날 농가의 수매활동을 도우려고 나온 김봉진 영암낭주농협(조합장 이재면) 덕진지점장은 “피해벼 수매가 활발하게 이뤄진 덕분에 지역 분위기가 매우 좋다”면서 “14일 기준으로 덕진면에서만 30㎏들이 2180포대가 수매됐다”고 밝혔다.
영암군에 따르면 이곳을 포함해 영암 전체 피해벼 수매규모는 같은 날 기준으로 2만2464포대에 이른다. 수매가 18일까지 이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최종 수매량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피해벼와는 별도로 14일부턴 일반벼 수매가 시작됐다. 이날을 포함해 모두 3회에 걸쳐 28일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양곡창고를 열 계획이다. 이곳을 찾은 벼농가들 사이에서는 ‘쌀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2만9752㎡(9000평)의 논에서 벼농사를 짓는 조희인씨(59·금강리)는 “가을태풍으로 이 지역에 수발아피해와 벼 쓰러짐(도복)피해가 컸다”면서 “수확량이 줄어든 만큼 쌀값이라도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공공비축미 수매가 전국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농가들은 이처럼 정부의 피해벼 수매를 반기는 분위기다. 게다가 피해벼 수매량이 정부의 당초 예상치(1만~1만5000t)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나자 쌀값 상승에 대한 농가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경기 안성의 벼농가 윤원희씨(51)는 “물가상승률 대비 쌀값은 크게 오르지 않아 실망이 큰데, 쌀을 포함한 모든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벼 품질이 평년보다는 다소 떨어져 아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박경재 경남 김해 한림농협 조합장은 “알곡이 형성되는 등숙기에 잦은 비로 일조량이 부족했고, 잇따라 강타한 태풍의 영향으로 벼 작황이 저조하다”면서 “이로 인해 수매에 나선 벼의 품질도 떨어져 올해는 2등급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14일 덕진면 수매현장에서 등급을 매긴 김영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남지원 영암사무소 검사관도 “지금까지 30여명의 농가가 이곳을 다녀갔는데 특등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해벼 혼입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학수 농관원 충북지원 유통관리과 팀장은 “현재 공공비축미 수매 초기단계인데, 일반벼와의 혼입 우려를 최대한 차단하고자 사전에 정해진 날짜에 따라 피해벼를 우선적으로 매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벼를 일반벼와 섞어 수매할 경우 등외 등급을 받아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만큼 농가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갑영 경기 북파주농협 조합장은 “태풍피해벼와 정상벼가 섞이면 미질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어서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다”면서 “혼입 사실이 드러나면 영구적으로 계약재배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농가들이 잘 대처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쌀값 안정을 이유로 정부가 재고미를 방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왔다. 이상민 한국쌀전업농 경북도연합회장은 “올해 벼 생산량이 예상보다 크게 줄자 미곡종합처리장(RPC)이나 도정업체가 품질 좋은 조곡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벼가 부족하고 등급도 낮아 소득이 평년보다 20~3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상승세에 접어든 쌀값을 잡으려고 재고미를 방출한다면 농민들이 크게 동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북 익산의 벼농가 김정현씨(67)도 “지난해 정부가 비축미를 방출해 어느 정도 시장에서 안정을 찾던 쌀값이 주저앉았던 기억이 난다”면서 “최근 상승세를 탄 쌀값이 또다시 정부의 시장개입(비축미 방출)으로 떨어지지나 않을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아직도 정해지지 않은 쌀 목표가격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왔다. 이재면 조합장은 “농가들이 올해 쌀 목표가격이 얼마인 줄도 모르고 수매에 나서야 하는 황당한 일이 농촌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당장 내년에 영농계획을 짜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농가의 답답함이 오죽하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