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농민신문
섬농사 섬농민 (3)울릉도(상) 40년 가까이 경지면적 변화 없어 섬지역으로선 드물게 농업 명맥 유지 과거엔 식량작물·천궁 등 재배 최근 오징어 어획량 줄면서 명이나물 등 산채농사 온힘
섬농부의 씨주머니는 어디나 비슷했다. 50여년 전에는 그랬다. 농사지을 땅은 부족한데 뱃길은 험해 육지에서 식량을 양껏 들여오기도 힘들었다. 그러니 씨를 뿌릴 수 있는 땅에는 밥이 될, 밥을 대신할 만한 작물을 심을 수밖에. 섬농부의 씨주머니가 대개 감자나 옥수수·콩·보리로 채워진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뱃길이 좋아지고 식량 구하기가 쉬워지면서 옥수수나 보리 씨를 뿌리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왔다. 오히려 농사는 돈이 되질 않았다. 많은 농부들이 씨주머니와 밭을 버렸고 섬지역의 경지면적은 급격하게 줄었다. ‘읍·면급 섬지역의 농업구조 변화(이기봉, 전남대학교 대학원)’에 따르면 섬지역의 경지면적은 2005년을 기준으로 1980년에 비해 72.4% 감소했다. 수치상 100% 감소한 섬도 있었다.
그런데 울릉도는 달랐다. 통계청에 의하면 울릉도의 경지면적은 1980년 1110㏊였던 것이 2018년엔 1131㏊로 늘었다. 거의 변화가 없다고 봐야 할 수치다. 울릉도가 여타 섬지역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팔아서 돈이 되는 작물이 거의 없었어요. 다 자기들 먹고살 식량을 재배했죠. 옥수수·감자·보리 그런 거요. 벼농사는 거의 없었죠.”
김형용 울릉농협 전무가 기억하는 옛 울릉도의 농사는 다른 섬과 차이가 없었다. 농작물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도 없었다. 산에서 나무 해다가 장에 나가 팔거나 양잠으로 돈을 버는 정도였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심기 시작한 천궁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너도나도 밭에 천궁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울릉도 천궁이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65%를 차지할 정도였어요. 울릉도 사람들 돈 많이 벌었지. 그때는 오징어잡이도 좋았으니까. 애들도 만원짜리 들고 다닌다고 그랬으니까.”
김덕호씨(북면 나리리)의 설명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10년 남짓이었다. 육지에서도 천궁 재배가 늘어나고 중국에서까지 수입되자 울릉도 천궁농업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때쯤 부지깽이며 미역취·산더덕 같은 산채농사를 시작한 것 같아요. 울릉도 산채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산채가 돈이 되는 거라. 옛날 같으면 산에 가 캐서 팔았겠지만 전기가 들어오고 나서 사람들이 나무를 안 때니까 산에 숲이 우거진 거라. 숲이 우거지면 산채가 잘 안 자라거든. 그러니 씨를 받아다 밭에 심고 키우기 시작한 거지.”
그렇게 시작된 산채농사는 2000년대 들어 울릉도 명이나물이 명성을 얻으면서 더 커져갔다. 보리·감자·옥수수가 밭에서 사라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돈이 되는 작물로 옮겨간 것’이라는 게 윤영민(북면 나리리)씨의 설명이었다.
“산채는 한번 밭에 심으면 몇년을 가거든. 봄에 수확하고 그대로 두면 겨울을 나고 다시 봄에 순이 올라오고. 그러니 산채 심은 밭에는 다른 걸 심을 수 없어요. 그런데 뱃길이 좋아져서 육지에서 쌀을 들여오기가 쉬워졌어요. 감자도 육지에서 들여온 거 20㎏ 한상자면 얼마나 오래 먹는데. 명이나물은 1㎏당 2만~2만5000원 받는데 굳이 감자농사 지으려고 밭을 비울 필요가 없는 거지.”

최근에는 울릉도의 돈줄이었던 오징어잡이까지 맥을 못 추면서 울릉도 사람들의 산채농사 의존도는 더 커졌다. 심지어 섬사람들의 계절 풍경까지 바꿔버릴 정도다.
“산채농사가 늘어나면서 계절이 달라졌어요. 오징어만 잡을 때는 봄이 한가했거든. 오징어는 11월에 시작해서 다음해 1월에 끝나니까 봄에 돈도 많고 한가하기도 했지. 육지에서 큰 행사는 다 가을에 하던데 울릉도에서는 군민체전 같은 큰 행사를 다 봄에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그런데 산채농사는 다르거든. 3월에 시작해서 5월까지 수확하고 6~7월에는 말리느라 봄에 바빠. 요즘 사람들이 왜 바빠 죽겠는데 봄에 행사를 하냐고 그래요. 조만간 울릉도도 가을에 행사를 하는 걸로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씨주머니 속 주인공이 바뀌자 농부들의 계절이 달라졌고 삶의 모습까지 변한 것이다. 농업이 어느때보다 홀대받는 요즘. 울릉도에서는 여전히 농사가 만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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