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당 재식포기를 37주(왼쪽부터)·50주·80주로 다르게 심은 ‘신동진’ 벼 소식재배 시험포장의 출수기(이삭 패는 시기) 모습. 사진제공=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2019년 벼 소식·직파 재배 결산 (상) 소식재배
40a에 육묘상자 16개도 가능 파종·이앙 때 일손 크게 덜어
3.3㎡당 50~60주 심는 경우 관행재배와 생산량 차이 미미
병해충·쓰러짐 피해도 적어 농가 호평…도입 늘어날 듯
적정품종·시비법 개발 필요 섣부른 도전 위험하단 의견도
벼농사는 기계화율이 98.4%에 이를 정도로 거의 모든 작업이 기계화됐다. 하지만 기계화율이 높은 작업이라고 해서 노동부담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앙은 이미 기계화율이 100%에 달한 지 오래지만 정작 현장 농가들은 여기에 드는 노동력이 상당하다고 호소한다. 이처럼 기계화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노동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이앙 방식을 바꾼 농법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소식재배’와 ‘직파재배’가 그 주인공이다.
2019년 한해 전국에서 소식·직파 재배에 도전한 농가들은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또 현장에선 각 농법의 전망을 어떻게 바라볼까. 2회에 걸쳐 2019년 소식·직파 재배 결산을 싣는다.
‘모를 드물게 심는다’는 뜻의 소식재배가 최근 벼농가들 사이에서 화제다. 소식재배란 이앙할 때 단위면적(3.3㎡·1평)당 재식포기를 관행 80주에서 37·50·60주로 줄이고, 한포기당 심는 본수를 3~5개로 맞추는 농법이다. 이렇게 하면 단위면적당 필요한 육묘상자수를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평소 육묘상자를 만들고 운반하는 데 드는 생산비와 노동력이 부담이었던 농가들은 이에 반색하며 소식재배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강원부터 전남·경남까지 전국 각지의 농가들이 소식재배를 도입했다.
◆노동력·생산비 절감 강점=소식재배는 노동력·생산비 절감을 전제로 하는 기술이다. 박광호 한국농수산대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관행대로 이앙할 때 육묘상자는 40a(1200평) 기준 120개가 필요하다. 반면 소식재배는 동일조건에서 재식포기가 50주일 때 육묘상자가 30개, 37주일 때는 16개만 있어도 가능하다.
육묘상자는 구입 후 이앙기에 싣기까지 최소 6번의 운반과정이 필요한데, 그 수가 줄면 이에 드는 노동력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박 교수가 전북 김제·익산, 경북 경주 소식재배포장을 분석한 결과 재식밀도 50주 기준 10a(300평)당 생산비는 관행 대비 약 10만원 줄었다.
지난해 소식재배를 도입한 농가들도 이같은 효과에 만족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13만2231㎡(4만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조병진씨(64·경기 오산)는 “모판이 줄어드니 12명이 하루 종일 매달려야 끝나는 파종작업도 지난해엔 10명이서 4시간 만에 끝낼 수 있었다”며 “육묘장에서 모판을 꺼내 논에다 가져다놓고 이앙을 마무리하기까지 관행으로 재배할 땐 4명이 7~8일은 걸렸는데 소식재배를 하니 2명이서 4일 만에 작업을 끝냈다”고 말했다.
◆수량성 비슷, 미질은 낮아=소식재배의 성패는 모를 드물게 심어도 생산량을 관행재배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농촌진흥청은 협력연구를 통해 2019년 충남·북, 경남·북, 전남·북, 강원 지역의 시험포장에서 재식밀도(37·50·60주)별 생산량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그 결과 생산량은 37주가 가장 낮고, 50·60주는 관행재배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10a당 현미수량이 37주는 531㎏, 50주는 553㎏, 60주는 562㎏을 기록했다. 관행대로 80주를 심은 포장에서는 564㎏이 나왔다.
황운하 농진청 작물재배생리과 연구사는 “분석 대상 지역이 다양한데 벼 수량이나 품질이 크게 떨어지는 지역은 없었다”며 “소식재배가 전국 단위에서 적용가능한 농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수량을 결정짓는 요소인 면적당 분얼수·영화수(벼알수)는 50·60주 모두 80주와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37주의 경우 3.3㎡당 분얼수가 관행(1253개) 대비 87%(1089개) 수준으로 다소 낮았고 영화수는 관행과 비슷했다.
반면 벼 품질을 좌우하는 천립중(완숙 벼 1000립의 무게)과 등숙률(알이 여무는 비율)은 재식밀도가 낮을수록 떨어졌다.
황 연구사는 “소식재배는 벼 품질보다는 수량을 높이는 데 치중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도입 확대 전망=전국적인 소식재배 도입면적은 아직 추산이 어렵다. 엄밀한 의미의 소식재배는 재식밀도와 재식본수를 모두 관행과 다르게 한 농법이지만 농가에 따라 재식본수는 관행을 유지한 채 밀도만 낮춘 곳도 있어서다.
지난해 소식재배를 했던 시·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와 농가들은 “소식재배 도입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식재배가 생산비 절감효과를 농가들이 바로 체감할 수 있는 농법인 데다 벼 포기당 간격이 넓어지면서 병해충·쓰러짐(도복)에도 강하다는 부수적인 이점까지 있어서다.
이은숙 익산시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소식재배 시범농가의 벼 포장은 연이은 가을태풍에도 쓰러짐이 없었고 모종을 본논에 널찍널찍하게 심다보니 통풍이 잘돼 잎집무늬마름병에 확연히 강했다”며 “농가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나 올해 소식재배를 도입하려는 농가가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소식재배는 도입 초기단계의 기술인 만큼 적정품종·이앙시기·시비법 등 새로 밝혀내야 할 기술이 많아 섣불리 도전해선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