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군 웅양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이강호(왼쪽부터)·유정수·신만재씨가 유례없는 긴 장마로 인해 탄저병 피해를 본 ‘홍로’ 사과를 살펴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긴 장마와 폭염 탓 병해 심각…사과 주산지 가보니
거창·청송·충주·무주 등지 일부 수확 포기…수확량 급감
만생종 ‘후지’는 갈반병 확산 생육 저조하고 당도 떨어져 “농자재값 건지기도 힘들 듯”
8월28일 찾은 경남 거창군 웅양면의 한 사과밭. 나무에 매달려 있는 빨간 <홍로> 사과 가운데 성한 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상당수 열매가 커다란 갈색 반점과 병해로 여기저기 움푹 패고 썩어 엉망진창이었다. 과수원 바닥에도 부패한 사과들이 수북이 나뒹굴고 있었다. 인근 과수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병에 걸린 사과 열매들이 그대로 나무에 달린 채 검게 변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40년간 사과농사를 지어온 이강호씨(59·동호리)는 “장마가 50일 이상 이어졌고, 비가 그친 뒤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탄저균이 하루아침에 급속하게 퍼졌다”면서 “<홍로> 재배면적 6611㎡(2000평) 중 절반 이상이 병해를 봐 수확을 포기했고, 나머지 절반도 30%는 상품성이 떨어져 시장에 출하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추석을 겨냥해 <홍로>를 잘 키워왔는데, 긴 장마로 인한 병해로 제대로 된 사과를 수확할 수 없게 돼 너무 속상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웃농가 유정수씨(59·노현리)도 “올봄 언피해와 우박에 이어 장마까지 더해지면서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며 “올해처럼 탄저병이 심해 <홍로> 수확을 포기하고 다 따버린 건 생전 처음”이라고 하소연했다.
탄저병에 걸린 ‘홍로’ 사과(왼쪽)와 갈색무늬병에 걸린 ‘후지’ 사과.
더욱 우려되는 상황은 만생종인 <후지>도 병 피해가 심각한 데 있다. 고제면의 사과농가 조판오씨(52·봉계리)는 “<홍로>는 탄저병으로 인해 수확을 제대로 못했고, <후지>도 갈색무늬병(갈반병)이 와서 잎이 다 떨어졌다”면서 “잎이 떨어지면 열매는 색이 안 나고 맛도 떨어지고 과도 정상적으로 크지 못하기에 올 농사는 사실상 망쳤다”고 말했다.
< 후지>를 주로 재배하는 밀양지역도 비상이 걸렸다. 정인섭 밀양농협 과장은 “장기간 내린 비와 바로 이어진 폭염으로 <후지> 사과나무의 잎이 노랗게 변하며 떨어지는 갈반병이 왔다”면서 “잎이 떨어지면 양분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 생육이 저조해지고 열매 당도도 안 오른다”고 말했다. 이어 정 과장은 “더군다나 양분이 부족하면 꽃눈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내년 농사에도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국내 최대 사과 주산지인 경북지역도 긴 장마 이후 병이 확산해 농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해환 청송 현서농협 조합장은 “장마 이후 <홍로>는 탄저병, <후지>는 갈반병 피해 범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면서 “갈반병으로 잎이 조기에 떨어지면 사과 색택과 비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사과 주산지 농가들도 걱정하기는 매한가지다. 충북 충주의 사과농가 곽용석씨(54·풍동)는 “사과농사를 20년 넘게 짓고 있지만 탄저병과 갈반병이 이렇게 심한 해는 처음”이라면서 “비가 그치는 틈을 타 소독을 해도 병은 잡히지 않고 약제값만 들어가 이래저래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전북 무주에서 9917㎡(3000여평) 규모로 <홍로>와 <후지>를 재배하는 배연호씨(63·무풍면 철목리)도 “조생종인 <홍로>를 지난주 수확했는데 탄저병이 급속히 퍼져 평년과 견줘 수확량이 반토막 났다”면서 “만생종인 <후지>도 잎이 갈색으로 변해 긴급 방제에 나섰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올핸 사과농사로 자재값이나 건질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들인 농자재비를 어떻게 충당할지 벌써 고민돼 잠이 안 온다”고 답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