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안전정책을 종합·조정하기 위해 구성된 식품안전정책위원회가 유전자변형(GM)식품의 표시제 확대에 오히려 딴죽을 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GM식품 표시제 확대는 지난해 초 전분당업체들이 GM옥수수를 원료로 수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문제로 떠오른 사안이다. 간장과 식용유·과자·음료 등은 GM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해도 성분이 남지 않아 ‘GM식품’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알 권리와 선택권 확보를 위해 유럽연합(EU)처럼 GM원료를 사용한 모든 식품에 표시를 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부도 각계의 의견수렴과 다른 나라 현지 실태조사 등을 거쳐 올 4월부터 시행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지난해 10월 입안예고에 이어, 12월에는 이 같은 내용을 대통령에게 업무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6월이 되도록 일정이 지켜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로썬 언제 어떻게 시행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식품안전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지난해 10월 만들어진 식품안전정책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린 탓이다.
위원회에서 이 업무에 관여하고 있는 이철호 고려대 교수는 최근 한 신문 기고 ‘안정적 식량공급과 GM정책’에서 지난 3월 위원회의 신식품전문분과위가 검토한 결과를 밝혔다. 우선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이력추적제가 확립되기 어려워 국민의 불신이 가중될 수 있으며 ▲비싼 non-GM식품을 사 먹을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간의 위화감이 커질 수 있고 ▲수입 가공식품은 수입업자가 제출하는 서류만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어 국내 식품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내용들이 지난해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개진된 사항인데다 표시제 확대를 강하게 반대하는 식품업계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식품공업협회 등 22개 단체는 정부와 국회에 제출한 건의서에서 ‘5년 이상 유예기간을 둬야 하며, 수입 가공식품이 non-GM식품으로 둔갑해 범람할 우려가 있고, 소비자 양분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들의 주장은 식품안전과 소비자 신뢰 제고 등 본질은 외면하고, 사회계층 갈등 등 엉뚱한 부분으로 문제를 비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농업단체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한우가 수입 쇠고기보다 비싸 구입을 망설이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쇠고기 원산지표시제와 이력추적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전문위의 구성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식품업계와 GM식품에 우호적 입장인 이철호 교수는 지난해 전분당업체의 GM옥수수 수입과 관련, “(GM식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전분당산업의 가동률이 40% 이하로 떨어지고 1만여명의 근로자가 해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수차례 기고와 발언을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분당업체의 전체 근로자 수가 그 10분의 1인 1,000명 수준인데다, 한국전분당협회가 스스로 밝힌 공장가동률(2008년 7~10월)도 40% 이하로 떨어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최준호 서울환경연합 부장은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추진단계에 들어선 제도를 식품안전정책위가 발목을 잡아 다시 의견수렴에 나선다는 것은 큰 낭비이며, 식품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고의적인 지연”이라며 “정책위와 전문위에 시민단체의 참여가 확대되고, 논의 내용을 공개하는 등 선진화된 소통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식약청 관계자는 “GM식품 표시제 확대에 관한 정책결정은 현재 의견수렴중이며, 전문위가 특정 개인의 의견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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