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삼복 무더위도 이것 앞에서는 ‘동작 그만’이다. 한입 넣으면 달콤함과 시원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등줄기까지 시원한 기운이 뻗친다. 달콤한 홍시와 북극의 찬 얼음이 만난 ‘얼음 홍시’가 그 주인공이다. 한여름에 출하되는 얼음 홍시는 틈새시장을 노린 대표적인 아이디어 상품이다.
일명 〈홍시 셔벗〉을 생산하는 충북 영동의 김유경씨는 지역에서는 ‘콜럼버스 감박사’로 통한다. 아무도 세우지 못하던 달걀을 세운 콜럼버스처럼 감을 깎아 말려 ‘곶감’만 만들 줄 알았던 농가들이 보라고, 홍시를 얼려 여름시장에 출하해 온 까닭이다.
감을 얼려 두었다가 한여름에 먹는다’는 발상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을에 감을 수확해 냉동 저장했다가 한여름에 꺼내 파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죠. 비용도 걱정이려니와 해동을 거치면서도 홍시 본래의 맛과 질감을 그대로 유지하는 기술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김유경(53)·정혜숙(49·충북 영동군 양강면 묘동리)씨 부부는 과일의 고장이자 감 고을로 유명한 영동에서 직접 감농사를 짓는 한편 가공 유통에 매달려 온 지 올해로 25년째다. 특히 냉동 감을 녹였을 때 홍시 고유의 질감과 맛을 제대로 느끼도록 하는 해동과 가공기술에선 김씨 부부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감을 곶감으로나 깎을 줄 알았지, 한여름에 홍시를 먹을 줄 알았겠습니까, 어디”라는 김씨 부부는 영동의 얼음 홍시가 다른 감 주산지보다는 후발 주자에 속하지만, 나름대로 차별된 몇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김씨에 따르면 충북 영동·경북 상주지역에선 곶감 만드는 〈둥시〉 품종으로 얼음 홍시를 만든다. 〈둥시〉는 원래 홍시로 먹는 연시용 감보다 수분이 적다. 따라서 감 과육의 질감과 감칠맛이 더 난단다. 얼음 홍시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중순 사이에 수확한 감을 원료로 사용한다. 이를 북극 날씨인 영하 26~영하 27℃에서 꽁꽁 얼리면 마치 당구공처럼 단단한 ‘빨간 얼음’이 된다.
이듬해 2월 설 명절을 지나 곶감 수요가 끝난 뒤, 3월부터 얼음 홍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해 요즘 같은 여름철이면 성수기다. 일주일이면 1,800세트 정도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온다.
다른 지역의 얼린 홍시와 다른 하나가 재포장이다. 대부분 홍시 모양을 유지해 해동시켜 숟가락으로 떠먹게 만드는 데 비해, 김씨 부부는 홍시 모양의 틀에 담아 셔벗(과즙을 얼린 얼음과자)으로 상품화한 점이다.
현재 한국감연구회 영동군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감나무 열그루면 자식 대학 보내는 것도 문제없다’는 한국감연구회의 신념을 철석같이 믿고 실천해 오고 있다. 실제 감농사만으로 자녀 셋을 모두 대학 교육 중이다.
홍시를 얼려 상품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 “영동 감은 곶감으로 많이 팔리는데, 곶감시장도 점차 포화 상태였습니다. 감 가공이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다양화된 상품을 선보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씨는 이때부터 감 가공사업을 위해 신농영농조합법인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일본 돗토리현을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감이 모두 크고 좋은 〈대봉시〉 품종인데 1등품만 내놓고는 2등품, 3등품은 모두 땅에 묻더라고요. 정신이 퍼뜩 들었죠.” 이후 한국에 돌아와 전법을 바꿨다. 원료 감은 좋은 감을 제값 주고 사는 것으로 말이다.
얼음 홍시는 냉동고에서 곧바로 꺼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김씨는 얼린 홍시의 씨는 물론 변비를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 있는 감꼭지 가운데 부분인 심을 없앤 뒤 60g·100g짜리 두가지 용기에 담아 인터넷(www.gam114.net)과 홈쇼핑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주로 선물용으로 나가며, 술을 좋아하는사람들이 주요 소비층이다. 최근에는 학교급식용으로 시장이 확대됐다.
이렇게 하는 동안 감의 부가가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원료 감 1개 가격은 보통 〈둥시〉 품종 상품의 경우 300~400원 한다. 이를 곶감으로 깎으면 500원쯤 받는다. 또 얼음 홍시로 만들면 값이 껑충 뛰어 1,000원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억여원. 김씨가 곶감을 합쳐 지난해 올린 총매출은 8억여원에 이른다.
“시쳇말로 웰빙 자연식품인 거죠. 100% 천연 홍시를 사용한데다 다른 인위적인 것은 단 1%도 첨가하지 않았거든요. 감 과육을 그대로 혀로 느낄 수 있죠”
김씨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 중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은 아이스크림도 제대로 못 먹는다는데 얼음 홍시는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자연식품이어서 학교급식용으로 인기가 대단히 좋아 앞으로 새로운 시장이 될 것 같다”고 자신했다.
“요즘엔 골프장에서 인기가 좋아 얼음 홍시 하나에 8,000원씩 받는다고 하고, 한류 열풍을 일으킨 유명 배우가 일본에서 운영하는 후식 전문점에서도 8,000원씩 받는다고 들었어요. 고급시장에 진출해 제대로 된 틈새시장을 열어 보겠습니다.”
김씨는 앞으로 감 와인·감 젤리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감의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043-744-0090.
영동=구영일, 사진=김도웅 기자 young1@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