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등의 농산물 수확기를 앞두고, 전기건조기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특히 품질이 떨어지는 전기건조기가 농촌진흥청 농업공학부의 시험평가에서 합격한 제품보다 10~20% 낮은 값에 현금 판매되는 등 시장질서가 문란해지고 있다. 자칫 이 같은 제품을 구입해 고장이 날 경우 사후관리를 받지 못해 애물단지로 전락할 우려도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황은=업계에 따르면 본격적인 수확철을 앞두고 농진청 시험평가에서 합격한 제품을 모방하거나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불량 건조기가 인터넷이나 방문판매 등을 통해 덤핑 판매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근래 들어 건조기값을 문의하는 농업인들이 많다”며 “불량 건조기들은 대략 농진청 시험평가를 통과한 제품보다 10~20% 값싸게 현금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농진청 시험평가를 거쳐 ‘농업기계가격집’에 신고된 전기건조기값은 대당 용량에 따라 150만~300만원대.
더구나 농진청 시험평가에서 불합격된 제품의 일부도 시판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진청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전기건조기 시험평가에 신청한 86대 중 50대(58.1%)만이 합격 판정을 받았다. 10대 중 4대 이상이 불합격 판정을 받은 셈이다.
이같이 현금 판매되는 전기건조기는 전체 시장(5만대)의 30~40%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결국 1만5,000~2만대가 제대로 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생산업체도 난립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농진청의 시험평가를 받은 업체는 대략 70여곳이지만, 실제 생산업체는 90곳이 넘을 것”이라며 “이 가운데에는 주소도 불분명하고 전화도 안되면서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하는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원인과 대책=불량 건조기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것은 건조기 판매에 대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농진청 시험평가를 받지 않거나 평가에서 떨어진 제품이더라도 정부 융자를 받지 못할 뿐 현금 판매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현금 거래의 경우 품질에 따른 제재가 없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금력이 없는 영세업체들이 난립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자칫 고장이 나도 사후수리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등 농업인만 골탕을 먹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기건조기 생산업체 실태가 파악되지 않음은 물론 관리도 안돼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 유통 현황을 파악하고 불량 제품 판매와 허위 선전 등의 행위를 단속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임종국 농진청 농업재해예방과 연구사는 “기존 전기건조기와 견줘 너무 저렴하게 판매한다거나 현금 판매를 요구하는 제품은 반드시 품질을 점검해 봐야 한다”면서 “따라서 전기건조기를 구입하기 전에 농진청 시험평가를 받아 합격한 제품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제조회사와 판매자의 연락처·보증내용 등을 서류로 받아 미연의 사고에 대비해 줄 것”을 농업인들에게 당부했다.
김태억 기자 eok1128@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