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수확기를 두달여 앞둔 농촌에 쌀 재고문제가 심각하다. 미곡종합처리장(RPC) 창고에는 2008년산 벼가 수북이 쌓여 있고, 산지 쌀값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지자체까지 나서 쌀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재고를 털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재고 처리에 온 신경을 쓰다 보니 RPC들은 수확기가 코앞인데도 신곡 매입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여주 대신농협…지자체·농민단체와 힘모아도 재고물량 예년의 5배 ‘한숨뿐’
“전 임직원이 쌀 판매에 매달리고 있으나 좀처럼 재고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올가을 쌀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7월31일 경기 여주 대신농협(조합장 김형하) 미곡종합처리장(RPC)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인근 저온저장창고에서 실어 온 벼를 도정시설로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었지만 직원들은 웃음을 잃었다. 지난해 수확기 때 농가 희망 전량인 6,400t을 수매한 벼 가운데 아직까지 2,000t이 창고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예년같으면 400t 정도 남아 있어야 할 시기지만 올해는 5배나 많은 재고가 있는 것이다.
대신농협은 재고를 줄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3월부터 40여명의 전 직원들에게 판매목표를 부여해 쌀 판매에 나서는 총력전을 펴고 있다.
또 여주군·농업인단체 등과 올 3월과 6월 두차례 ‘여주쌀 판매촉진 비상대책회의’를 갖고 지속적인 신규거래처 확보에 나서고 있다. 출향인사, 지역 내 기업체·음식점 등에 여주쌀 사용을 권장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주쌀 선물하기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가격도 20%나 내렸다. 다른 지역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값 때문에 판매가 더 부진한 것으로 판단, 계속 쌀값을 내려 최근에는 20㎏ 한포대당 4만3,000원을 받고 있다. 이는 값을 내리기 전 5만4,000원에 비해 1만1,000원 내린 것이다.
이경호 장장은 “현재 판매가격은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판매를 할 수록 적자지만 곧 9월이면 올해 햅쌀을 수매해야 하기 때문에 재고 소진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전 임직원과 지방자치단체까지 쌀 판매에 나서고 있지만 쌓인 재고처분 속도는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속도로는 올 햅쌀이 나올 때쯤에도 1,500t가량의 재고를 안고 있어야 할 처지다.
햅쌀 수매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대신농협측의 전망이다. 김형하 조합장은 “지역농협, 농협여주군지부, 여주군청 등이 수시로 대책회의를 열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하루빨리 일정량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해야 한다”며 정부의 대책을 호소했다. ☎031-883-3611.
여주=최상구 기자 sgchoi@nongmin.com
●서천 동서천농협…대도시·향우회 등 판촉 안간힘, 어쩔수 없이 값낮춰 판매 ‘적자’
충남 서천 동서천농협(조합장 오영환)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찾은 8월3일, 지게차가 벼 저장고에서 톤백에 담긴 벼를 가져다 투입구에 연신 쏟아붓고, 포장 라인에서는 포대에 담긴 쌀이 쉴 새 없이 배출되고 있었다.
쌀 판매 부진에 허덕이던 6월 이전에 비해 활기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실제로 6월 이전 월 300t에 불과하던 벼 재고 소진량이 6월 700t까지 올라섰고 7월에는 800t을 처리했다. 50%를 밑돌던 공장 가동률도 80% 수준으로 회복된 상태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5,700t의 벼를 수매해 7월 말 현재 여전히 2,100t이 남아 있다.
때문에 조합장과 RPC 장장을 비롯한 전 임직원이 쌀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7월13~15일 서울 영동농협, 17~19일 서울 관악농협에서 각각 쌀 판촉행사를 실시했다. 최근 동서천농협이 쌀 판매를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두 행사를 통해 팔려 나간 쌀은 총 1,000포대(20㎏들이).
대도시에 거주하는 출향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7월17일 서울 관악농협에서 가진 재경 서천향우회와의 간담회에서 오영환 조합장은 쌀 판매 부진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했고, 이에 향우회장은 “회원 모두가 고향쌀을 먹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거래처로의 지속적인 쌀 판매를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임성택 RPC 장장은 “요즘 쌀 저가경쟁이 워낙 치열해 아무리 오래된 거래처라도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RPC들에게 언제라도 납품권을 뺏길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RPC의 올해 손익 전망은 우울하다. 판매가격을 손익분기점보다 낮은 20㎏ 한포대당 4만원 이하로 낮췄기 때문이다. 7월 말 현재 3억5,0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연말까지는 5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오영환 조합장은 “손익이 문제가 아니라 올가을 정상적인 수매를 위해서는 현 2,100t의 재고 가운데 1,200t은 팔아야 한다”며 “수매까지 남은 두달여 동안 쌀 판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041-95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