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에서 돼지 6,000여마리를 키우는 이모씨는 현재 기름값 걱정을 잊었다. 경기도와 지역 대학교에서 세워 준 바이오가스 생산시설 덕택이다. 이 시설로 돼지분뇨와 남은 음식물을 혼합해 전기와 열을 만들어낸다. 그는 “이 시설에서 나온 열로 1,000마리 자돈사에 ‘온돌’ 난방을 해 줬더니 생산성까지 높아졌다”면서 “남은 축분을 퇴비로 쓰는 등 귀중한 자원으로 변신시켰다”며 흐뭇해 한다. 이씨처럼 석유 대신 가축분뇨·목재펠릿(우드칩)·유채 등 바이오매스와 태양광·풍력·지열·소규모 수력발전 등 자연자원을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농업인들이 속속 늘고 있다. 한마디로 ‘에너지 농사’를 짓는 셈이다.
◆‘에너지 농사’ 시대가 왔다
강원 인제군 남면 남전1리 ‘햇살마을’. 이 마을에서는 태양광발전소를 세워 매달 3,000여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죽음의 땅’으로 일컬어지던 전남 진도군 고군면의 한 폐염전에도 태양열발전소가 세워지면서 ‘전기밭’으로 재탄생했다. 국제 유가 급등과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가시화되면서 바이오디젤도 부각되고 있다. 넓은 간척지가 있는 전북 부안군 주산면·하서면 일대에서는 유채를 재배해 바이오디젤을 생산, 트랙터 등 농기계 연료로 활용하고 있다. 숲에서 나무를 간벌해 얻은 목재펠릿 등도 석유를 대신할 에너지원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충북 진천 백곡저수지 등에 소수력 발전시설을 설치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초속 6m 이상의 바람이 부는 강원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육백마지기를 비롯한 백두대간 지역에서는 풍력발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화학비료 없이 벼농사·과수·원예 등 농사를 짓는 유기농업과 축산분뇨로 퇴·액비를 만들어 쓰는 자연순환농업 역시 에너지 생산과 같은 효과를 낸다. 질소비료 생산에 들어가는 석유를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고 농가소득에도 보탬이 되는 것이다. 자연순환농업이 연간 1조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해 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유기농업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홍동면은 소·오리 등 가축분뇨로 화학비료를 대체, 유기농 쌀·한우 등을 생산할 뿐 아니라 풍력과 태양광을 활용한 가로등으로 마을길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새 에너지, 농업에서 찾아라
신·재생에너지는 거의 농업·농촌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의 자연환경이나 농업을 통해 생산되는 농산물과 농업부산물 등으로 가스·전기·바이오디젤 등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서다.
이는 농업의 기능이 식량 생산을 넘어 에너지 산업으로 재평가 받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규모 축산농가(축산농가 중 20%)가 배출하는 가축분뇨로 열병합발전에 나설 경우 연간 전기 7만3,000TOE(석유환산톤), 열 2만7,000TOE를 얻을 수 있다. 1TOE는 석유 1t을 연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전국의 휴경지와 이모작 지역 64만㏊에 연료용 유채를 심으면 연간 국내 수송용 디젤 소비량의 6.2%에 해당하는 112만㎘의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다.
각종 개발 사업과 간벌작업 등에 따른 폐목재 등 임산 폐기물을 목재펠릿으로 가공해도 연간 110만TOE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태양광·풍력·지열·소수력 등 농촌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도 녹색성장의 한축으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이렇듯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농업 등이 농촌 녹색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국내 현실은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딘 상태다. 비록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2020년까지 세계 7대 녹색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법적 토대조차 갖춰지지 않은 실정.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은 “정부 차원에서도 녹색성장에 대한 방향과 비전은 물론 실천 전략이 아직 불투명하다”며 “농촌지역 신·재생에너지 수요와 보급 현황 파악 등 기반 조사와 함께 농촌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촉진할 제도부터 확립해야 국민들에게 녹색성장의 중요성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기술 부족과 높은 비용, 낮은 국민적 관심도 풀어야 할 과제다.
김광동·류수연 기자 capa74@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