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묘장 등을 대상으로 병해충 예찰조사를 하겠다고 하면 ‘당신이 뭔데 내 육묘장을 들여다보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농업인과 육묘장 경영주가 협조를 해 주지 않는 이상 저희로서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죠.”
농촌진흥청 및 도농업기술원, 시·군농업기술센터 병해충 전문가들은 육묘장을 포함한 일선 농업 현장을 대상으로 한 병해충 예찰업무가 결코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병해충 확산의 원인을 구명하기 위해 정밀 역학조사를 실시하거나, 감염된 묘를 발견했을 때 강제로 폐기토록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농촌진흥법으론 피해예방 역부족
현재 외래 병해충에 대한 예찰과 방제업무는 ‘식물방역법’에 일부 규정돼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검역과 방제업무를 담당하는 ‘식물방역관’은 방제 대상 병해충이 붙어 있다고 의심되는 검역 대상 물품이나 선박·차량·항공기 등을 검사할 수 있고, 해당 병해충이 검출되거나 금지품이 발견되면 소유자로부터 소독·폐기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경검역, 수출단지, 격리재배에 한정돼 있다. 농업 현장에서 이미 발생한 외래 병해충의 피해확산을 막기 위해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감염 농작물의 판매·이동을 금지토록 하는 법적인 장치는 놀랍게도 전무하다.
농업 현장에서 병해충 예찰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농진청과 각급 지방농촌진흥기관의 사업을 규정한 ‘농촌진흥법’ 역시 허술하기는 마찬가지. 이 법에 병해충 예찰업무는 농촌지도사업의 정의를 밝힌 제2조 2항 6호에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명시돼 있다. ‘(농촌지도사업이라 함은) 농작물 병해충의 과학적인 예찰, 방제정보의 확산 및 기상재해에 대비한 기술지도’. 이 한 줄에 의거해 농진청과 지방농촌진흥기관의 농작물 병해충 예찰업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간 식물체 이동이 늘어나고 기후변화에 따라 작부체계가 크게 달라지는 현실에서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법규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법규만으로는 발생 원인 파악이 힘들고 피해 예방을 위한 약제 등이 개발되지 않은 신종 병해충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허술한 농촌진흥법을 보완하거나, 외래 병해충으로부터 농작물 피해를 예방하는 방안을 뼈대로 하는 독자적인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태성 경남도농업기술원 병리곤충연구실 박사는 “농업 현장에서 외래 병해충의 발생·피해 정도를 신속히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이 해당 공무원에게 부여돼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 공무원에 사법권 부여
지난 6월 제정된 ‘산림보호법’이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이 법에 따르면, 산림 병해충의 예찰·방제를 하는 지자체나 산림청 소속기관의 장은 ▲산림 병해충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발생한 경우 예찰·방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산림 소유자나 수목의 소유·판매자 등에게 병해충이 발견된 수목을 제거하고 ▲병에 감염됐거나 감염 우려가 있는 종묘와 토양을 소독케 하는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농진청의 한 관계자는 “농작물 분야에서의 병해충 관리가 오히려 산림 분야보다도 뒤처져 있는 셈”이라며 “농업 현장과 주변의 농작물을 조사·채취할 수 있는 (가칭) 조사관의 권한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이들로 하여금 농작물의 이동 금지와 필요할 경우 폐기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한 (가칭) 농작물보호법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작물보호법 빨리 만들어야”
아울러 기존 ‘종자산업법’에 불분명하게 규정된 건전묘 공급에 대한 사항도 이참에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종자업체에 품질을 자체 보증토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묘장으로 하여금 건전묘 생산을 자체 보증하게 해 농업인의 신뢰를 높이는 대신 이에 필요한 경비를 국가가 부담토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도농업기술원의 한 관계자는 “상업적인 육묘장에 대한 제도적인 관리 감독은 불필요한 민원 발생의 소지를 없애고 육묘장에 대한 농업인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진일 진주프러그묘 대표는 “대부분의 민간 육묘장들은 노동력 부족을 겪는 농촌에 건전묘를 공급한다는 자부심으로 병해충 발생 예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육묘장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규제가 완화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소영 기자 spur222@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