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풍작으로 쌀 공급량이 수요량을 웃돌면서 ‘쌀 생산조정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일정기간 논을 놀리거나(휴경)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어(전작) 쌀 수급 및 가격 안정을 꾀하자는 것이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쌀 수급동향과 대책’이란 보고서에서 2018년까지 연간 40만t의 쌀이 과잉 생산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매년 8만㏊의 논에 대해 생산조정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생산조정 방법으로 ▲고품질 쌀 생산을 위한 녹비작물 재배 ▲농가별 순환 휴경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한 콩 재배 ▲축산농가와 연계한 사료작물 재배 등을 제시했다.
신재근 농협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쌀 생산량이 평년작만 유지하더라도 추가 재고가 발생한다”면서 “식량안보나 통일 등을 대비해 쌀 생산 능력은 보유하되 생산량은 소비수준에 맞춰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남도도 논에 벼 대신 콩·옥수수를 재배하고 농가소득 감소분을 정부 예산으로 보전해 주자는 건의문을 26일 정부에 전달했다. 벼와 재배시기가 같은 콩·옥수수를 심어 쌀 수급을 조절하면서 한편으론 콩과 옥수수의 자급도를 끌어올리자는 취지다. 도는 작물별 평균소득이 1㏊당 ▲쌀 624만원 ▲콩 427만원 ▲옥수수 450만원인 점을 감안, 벼 대신 콩을 심을 경우 197만원, 옥수수는 174만원을 농가에 보전해 주자고 제안했다. 윤성호 전남도 친환경농업과장은 “생산조정제는 쌀 가격 안정은 물론 수입에 의존하는 곡물의 자급도를 높일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도 자체적으로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논 중 약용작물 재배가 가능한 1,500여㏊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전작 지원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황영철 의원(한나라당) 역시 ‘쌀 수급 대책을 위한 정책제언’이란 자료를 통해 “정부가 쌀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의원은 “일본은 논 면적의 36%를 휴경하거나 대체작목을 심어 수급을 조절한다”며 “정부가 쌀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생산조정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농민단체도 1970~80년대부터 생산조정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일본·대만의 예를 들면서 “장기적인 쌀 수급 안정을 위해서는 대북 쌀 지원과 함께 생산조정제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현재의 수급여건상 생산조정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쌀 공급량 가운데 소비되고 남는 물량이 연간 16만t가량인데, 이 정도면 과잉이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또한 가공식품 활성화를 통해 쌀 소비를 늘릴 경우 2012년부터는 수급을 맞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는 생산조정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다. 휴경은 관리 소홀로 인한 병해충 확산 및 논의 황폐화가 우려되고, 전작은 대체작목의 과잉생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막대한 예산 투입도 정부로선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2003~2005년 시범사업으로 추진했던 쌀 생산조정제는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됐다”며 “현재로서도 예산의 효율성, 그리고 논의 형상 유지 등을 고려할 때 적합한 정책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학계 일각에서도 반대 의견을 내는 학자가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자는 “쌀 생산을 장려하는 직불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정책 방향이 반대인 생산조정제를 도입한다는 건 모순”이라며 “두 제도가 동시에 운용될 경우 상충된 제도에 소득을 이중으로 보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상영 기자 suppl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