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창밖이 을씨년스럽다. 잿빛 하늘, 앙상한 나뭇가지, 바스락거리며 뒹구는 낙엽들…. 싱그런 초록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이럴 때 생활 속 허브(herb)로 분위기를 바꿔 보자. 작은 화분에 담긴 앙증맞은 몇가지 허브만으로도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눈을 즐겁게 하는 초록의 싱그러움, 코끝을 감도는 향기, 상쾌함을 더하는 풍미까지. 허브가 세가지 행복을 전해 준다.
#사람에게 이로운 풀 … 솔잎도 허브 식물
‘허브는 특별하다(?)’ 로즈메리(rosemary)·민트(mint)·라벤더(lavender)·세이지(sage)·타임(thyme)…. 이름에서 풍기는 강한 이국적인 뉘앙스 때문일까. 사람들은 허브 하면 흔히 고상하고 우아한 그 무엇인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허브는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허브는 꽃·잎·줄기·종자 등을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는, 사람에게 이로운 ‘초록의 풀’이다. 세계적으로 유용한 허브식물은 약 2,500여종에 이른다. 이중 유럽이나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로즈메리·민트·세이지 등이 허브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허브가 서양인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송편을 만들 때 향긋함을 더하기 위해 써 온 솔잎이나, 단옷날 머리를 감는 데 쓰던 창포, 약재와 식용으로 널리 애용해 온 쑥 등도 모두 허브 식물이다.
#실내 공기정화·습도 조절
오래 전부터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나는 허브 식물을 우리 방식에 맞게 이용해 왔고 현재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허브와 함께하고 있다.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보다 다양한 종류의 서양 허브가 도입돼 더 풍성한 허브의 세계를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허브 재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농원에 가면 적당히 자란 허브 모종을 한 포기당 2,000~3,000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향과 쓰임새를 살펴 맞춤한 허브를 사고 화분에 옮겨심은 후 관심과 애정을 쏟으면 허브는 우리가 준 것 이상의 기쁨을 되돌려 준다.
허브를 즐기는 데 격식을 따질 필요는 없다. 각각의 허브가 지닌 고유한 향과 성분을 골라 취향대로 즐기면 된다. 창가나 베란다, 주방의 자투리 공간에 허브 화분을 두고 초록의 새 잎이 돋아나는 것만 보아도 좋다. 허브마다 지닌 독특한 향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허브는 실내공기를 정화하고 습도를 조절해 주는 기능도 있어 더욱 좋다.
#천연 웰빙향료…요리·화장품 등 쓰임새 다양
허브는 훌륭한 요리 재료이기도 하다. ‘로즈메리’ ‘바질’ 등 향이 좋은 허브의 생잎을 손으로 툭툭 뜯어 요리에 넣으면 음식 속에 향긋함이 고스란히 배어들어 풍미가 더해진다. 요즘같은 스산한 날에는 허브 차가 그만이다. 감미로운 향을 즐기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다. 허브의 생잎에 뜨거운 물을 붓고 꿀이나 레몬 한조각을 더하면 맛과 향이 훌륭한 건강차가 된다.
피로가 몰려드는 저녁에는 허브를 이용한 목욕이 좋다. 욕조에 따뜻한 목욕물을 받고 허브를 넣은 후 몸을 담그면 은은한 향이 퍼지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온몸으로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조금의 수고를 더하면 허브의 세계는 한층 더 풍성해 진다. 꽃이나 잎, 줄기를 용도에 맞게 잘 조제해 이를 원료로 활용하면 허브는 향초·비누·목욕제·식초·와인·오일 등 다양한 모양과 쓰임새의 천연 웰빙 생활용품으로 화려하게 재탄생한다.
허브 전문점에서 파는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좋지만 가정에서 직접 허브를 재배해 활용하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갖가지 허브를 재배하면서 때때로 온 가족이 모여 허브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와 아기자기한 생활용품도 만들어 보자.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이 피어오른다. 허브가 전해 주는 향기로운 행복이다. 허브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평창·포천=이경석, 사진=김병진 기자 ksle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