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초 천일염이 식품으로 분류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문제는 안전성이다. 각종 식품 이물질 발견 사고와 멜라민 사태 등을 거치면서 식품안전에 대한 요구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수십년간 광물이던 천일염의 생산환경과 염전시설은 매우 열악해 소비자 잣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천일염 명품화’는 멀고도 까마득한 일이다.
#가소제와 석면에 노출 우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12월 염전에 까는 폴리염화비닐(PVC) 장판에서 중금속 및 가소제(可塑劑·고온에서 성형가공을 용이하게 하는 유기물질)가 검출될 수 있다며 농림수산식품부에 대책 마련을 건의했다. 실험 결과 천일염에서 검출된 가소제 성분이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닌 것으로 조사됐지만 천일염은 국민 기초식품인 까닭에 오염 가능성을 방치하기 어렵다는 것이 소비자원의 판단이었다. 함경식 목포대 식품공학과 교수도 “위해 수준 이하로 검출됐다는 결과가 PVC 장판에 면죄부를 줘서는 곤란하다”며 “명품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소금창고와 해주의 슬레이트지붕이 지적되고 있다. 지난 11월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전국 주요 염전과 천일염 제품을 조사한 결과 석면에 노출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염전의 장판 연결 접착제와 보강재로 쓰이는 합판·재활용 플라스틱, 이동로에 까는 부직포, 창고 등에 사용하는 철제 못과 강판의 부식 등에서 유해물질이 유입될 우려도 크다.
#시설현대화·과당경쟁 해소방안 마련해야
시설 개선이 필요한 염전은 1곳 3㏊ 기준으로 1,300곳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1개 염전시설 현대화에 2억원 정도 소요된다고 보면 3,000억원에 가까운 재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올해 정부의 사업 예산은 33억원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라면 100년을 기다려야 한다.
천일염의 산지가격은 1㎏에 200원 안팎으로 염전 1곳당 300t을 생산해도 연간소득이 6,000만원밖에 안된다. 2명 이상 염부를 고용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또 절반에 가까운 생산자들은 염전을 임차해서 쓰고 있다. 시설 현대화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투자할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
산지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게 형성되는 것은 유통구조가 취약한 탓이다. 특히 생산자들끼리의 경쟁이 워낙 치열해, 가격 주도권을 상실하고 대부분 중간상인에 의존하고 있다. 창고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데다 돈이 급하다 보니 싼값에도 마구 내다 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매상들이 전체 유통물량의 50% 이상을 취급, 비수기에 값을 후려쳐 대량 매집한 다음 김장철 등 성수기에 비싸게 파는 행태가 고착화돼 있다. 게다가 중국산 등을 수입해 ‘포대갈이’ 수법으로 불법유통시키는 업자들이 횡행, 시장을 혼란시키고 있다.
#재원 마련과 산지 조직화 과제
천일염 생산 및 가공·유통 시설과 시스템을 현대화하는데 소요되는 재원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늘리고 조기집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대안으로 정부·지자체·중소기업청·농협·연기금·식품기업·대학·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천일염 펀드’ 조성이 이야기되고 있다. 명품화와 수출이 유망한데다 친환경적이고 지역경제 활성화 및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을 높게 치고 있다.
이밖에도 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기술과 시설·장비를 표준화하고 국산 천일염의 학술적 가치를 좀더 체계적·과학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염전 주변의 유해물질 배출을 규제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한편 친환경직불제 도입도 필요하다.
품질관리에도 힘써야 한다. 품질인증제와 등급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지리적표시 등록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토판염과 숙성염·자염·구은소금 등 고품질 제품을 명품으로 특화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일반 천일염은 수출 등 장기 보관·유통 때 결정이 굳어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저가 이미지를 벗기도 쉽지 않다.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프랑스 게랑드 천일염도 ‘소금의 꽃’이라고 하는 〈플루드셀〉은 전체 생산량의 10% 정도이며, 나머지보다 몇배 높은 값에 팔린다.
유통 개선 부문에선 농협의 역할이 크다. 올해 발족한 농협 신안천일염연합사업단이 주도해 산지 조직화에 나서고, 향후 공동사업법인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송영대 연합사업단장은 “신안지역이 전국 생산량의 65% 이상을 차지하므로 제대로 조직화만 되면 산지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포장재 관리를 엄격하게 해 중국산 부정유통을 막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이 같은 지원 및 사업 추진을 위해 하루빨리 법 체계를 정비(‘염관리법’→‘소금산업육성법’)해야 한다.
윤덕한 기자 dkn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