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 중 환갑을 넘긴 분은 태조·정종·광해군·영조·고종 등 5명인데, 모두 잡곡밥을 즐겼습니다. 특히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삼시세끼 잡곡밥을 드실 정도로 잡곡 애호가였습니다.”
김규동 우리잡곡살리기운동본부 회장(66)은 “오늘날처럼 영양 과잉이 병이 되는 시대에는 잡곡(雜穀)이 곧 약곡(藥穀)”이라고 힘줘 말한다. 당뇨·고혈압 등 기름진 음식을 편식해서 생긴 현대병은 다양한 영양소를 가진 잡곡 혼식을 통해 얼마든지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
강원 원주 신림농협 조합장이기도 한 김회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650종의 토종잡곡 종자를 수집, 무상 보급에 힘써 오고 있으며 요즘도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쌀밥에 꼭 잡곡을 섞으라”고 호소하고 다닌다.
가난의 상징이던 잡곡이 근래 들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나라살림이 좋아지면서 너무 잘 먹고 많이 먹어서 생기는 질환들이 늘자 한동안 냉대했던 잡곡에 건강을 되살리는 해답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조·귀리·수수·녹두·팥·메밀 등 잡곡을 꾸준히 재배해 온 것도 바로 의료행위와 먹을거리와 농사는 한뿌리라는 ‘의식농동원(醫食農同源)’의 이치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양 편중이나 서구식 식문화로 인한 각종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잡곡이 상당히 유용하다는 것은 최근의 각종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잡곡에는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등 필수영양소 외에 각종 미량 요소가 고루 들어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풍토 속에서 자란 토종 잡곡은 한국인의 인체에 필요한 생리활성물질들을 함유하고 있어 약리효과 또한 뛰어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잡곡밥은 보기에도 좋다. 여러가지 잡곡이 고루 섞인 오곡밥에 군침돌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예전에는 보리나 콩이 섞인 도시락이 부끄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흰밥에 고깃국으로 차린 식탁이 손가락질 받는 시대다.이승환 기자 lsh@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