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농협이 배추·무 수급안정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시장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추석 이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던 배추값은 최근 내림세로 돌아섰다. 여전히 변수가 남아 있어 시장흐름을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일단 비상 국면은 벗어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기상 문제일 뿐 적정수준의 수급안정 도달도 그리 멀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저가공급으로 시장흐름 반전=고공행진하던 배추값이 내림세로 돌아섰다. 지난 9월 말 서울 가락시장에서는 배추 상품 10㎏ 한망(3포기)당 평균값이 3만6,000원까지 치솟은 후 일주일 넘게 3만원 안팎의 초강세를 지속했다.
그러나 정부와 농협이 수급안정대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수급은 현저히 개선되는 모습이다. 특히 6일 농협이 ‘7~24일 배추 1,000t 30% 할인판매’ ‘김장배추 300만포기 예약판매(포기당 2,000원)’를 골자로 한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한 이후 소비심리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실제로 7일 농협 특별공급 첫날 수도권 농협 유통센터에서는 배추가 판매와 동시에 동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배추를 찾는 소비자들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서울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의 경우 이날 오전 9시부터 배추 한포기당 5,600원씩에 특별판매를 시작했지만 오후 3시까지 판매된 물량은 당일 준비 물량의 절반인 2,400포기에 그쳤다. 최원석 양재점 채소팀장은 “‘김장배추 예약판매’ 방안이 나오면서 앞으로 크게 걱정할 게 없다는 소비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대형 할인점들도 일제히 값을 낮춰 공급하고 있다. 이마트는 7~13일까지 일주일 동안 배추 한포기당 6,450원, 무·대파·시금치·양파·고추·애호박·쌈채소·고구마 등 8개 품목은 6.3~38.5% 할인판매한다. 홈플러스도 13일까지 배추 한포기당 5,980원, 총각무는 한단에 3,980원씩에 할인판매한다. 롯데마트는 9~10일 중국산 배추를 한포기당 2,500원에 판매했다.
◆수급불안 진정국면에 접어드나=가락시장에서는 7일 저녁 경매에서 배추 상품 10㎏ 한망이 평균 2만원에 거래됐다. 9월27일(시세발표일 기준) 3만6,0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4일 2만8,692원, 6일 1만9,840원, 8일 2만원 등으로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오현석 가락시장 대아청과 경매사는 “산지 공급량에 큰 변화는 없지만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태에서 정부 수입과 서울시·농협 등의 할인가격 물량이 공급되면서 수요가 분산돼 도매시장 거래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다. 이철기 농협 강서공판장 경매사는 “배추에서 무·양배추 등으로 분산됐던 대체수요의 변화와 산지 작황 변화 등이 변수”라고 밝혔다.
하지만 수급상황이 다시 악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배추 산지가 확대되고 지자체와 농협, 대형 마트의 저가물량 공급에 수입물량도 대기중이기 때문이다. 롯데마트의 중국산 배추 판매에 이어 18일에는 정부의 1차 배추 수입물량의 시장방출이 예정돼 있다. 민간수입업체들도 본격적으로 시장진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도매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민간수입 중국산 배추 포기당 국내 도착가격은 1,100~1,200원 정도로 파악된다. 수입업체들은 판매가를 한포기당 2,000~2,500원 선으로 잡고 도매시장에 상장을 타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진입은 정부 도입물량의 시장거래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을 종합하면 공급 부족이 예상보다 빨리 해소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낙폭 과다 대비 수위조절 필요=배추파동이 점차 진정돼 가는 만큼 이제는 공급 측면에서 서서히 수위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준고랭지 2기작과 가을배추 작황이 썩 좋지 않아 단기간에 국산 공급물량이 급격히 늘기는 어렵지만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국내 산지가 확대돼 공급량이 점차 늘고 여기에 수입량도 더해지면 시세 낙폭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창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것이라지만 정부가 연말까지 배추·무 수입에 무관세를 적용한 것은 민간수입을 자극할 수 있다”며 “민간수입량이 풀리면 예상보다 충격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연구위원은 “다행히 농협의 김장배추 공급대책으로 추가 수입은 어렵겠지만 이미 결정된 수입량이 단기적으로는 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제부터는 수입품에 대한 철저한 유통관리로 가격 급락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지에서는 중국산 신선배추의 유통과정에서 외래병해충 문제 발생을 우려하며 철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인태 충북 괴산 청천농협 조합장은 “정부가 검역을 철저히 한다고 하지만 배추 농가들은 극도로 불안해 하고 있다”며 “3년 전부터 포도 농사를 망치고 있는 꽃매미와 같은 외래병해충이 유입되면 농가 피해는 한해에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만큼 통관 검역뿐만 아니라 유통단계별로 2·3중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석, 사진=김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