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는 주부 손명업씨(39)는 최근 선물로 받은 과일상자를 열다 깜짝 놀랐다. 5㎏ 과일이 부직포 가방부터 시작해 두툼한 골판지상자, 완충용 스펀지, 난좌, 팬캡, 띠지까지 무려 6가지 포장재로 겹겹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손씨는 “고급품을 강조하고 유통중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내용물에 비해 포장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농산물 과대포장은 여러가지 문제가 따른다. 생산비 상승과 환경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저탄소 녹색성장 이슈와 맞물려 농산물 포장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과대포장 환경에 큰 부담
선물용 농산물에 관행적으로 많이 쓰이는 띠지나 팬캡 등은 재활용되지 않고 그냥 버려지는 게 다반사다. 이는 자원재활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부담을 준다. 특히 포장상자는 환경문제와 더 밀접히 관련돼 있다.
국내 농산물 포장용 골판지상자는 필요 이상으로 압축강도가 강하거나 중량이 무거워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또 포장에 화려한 색상을 내느라 종이와 잉크가 더 많이 투입돼 그만큼 환경저해요소 발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농촌진흥청 박성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배·감귤·토마토 3개 품목을 대상으로 국내에서 한해 사용되는 골판지상자의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 발생량을 추정한 결과 최대 5만747t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박박사는 “3개 품목의 골판지상자를 제작할 때 적정한 압축강도로 무게를 줄이기만 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6,632t(13.1%) 감소한다”며 “이는 매년 약 132만6,000그루의 소나무를 심는 효과와 같다”고 설명했다. 또 지나치게 무거운 골판지상자는 운송중 하중을 크게 해 물류비 상승과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개선이 요구된다고 했다.
◆비용절감 위한 핵심과제
국내 농산물 물류비에서 포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농진청에 따르면 국내 골판지상자의 50% 이상이 농산물 포장용으로 사용되며, 과일 포장에 쓰이는 골판지상자만 연간 최소 2억6,900만장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포장 가속화와 새로운 품목의 골판지상자 이용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그 사용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매년 사용량이 늘고 있는 골판지 포장재로 인해 농가 생산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배 15㎏ 특품의 선물용 포장비는 상자당 1만4,000~1만5,000원에 달한다. 배 산지에서 상자당 가격대비 포장재 비용이 무려 25%에 이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수일 포장개발연구소장은 “사과와 오이 두개 품목의 골판지상자 포장재를 분석한 결과 포장원료 구성 방식만 바꿔도 연간 39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는 물론 8,660t의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대수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사무국장은 “포장재 개선으로 포장비를 줄이는 일은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발맞춰 농업이 추구해야 할 공익적 기능의 하나로 정부와 농업계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농협 포장개선 노력 주도
환경보전과 비용절감을 위한 포장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면서 농업계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사)한국배연합회(회장 박성규·천안배원예농협 조합장)는 지난 7월 관행처럼 사용해 온 띠지와 팬캡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해 큰 주목을 받았다. (사)한국사과연합회(회장 서병진·대구경북능금농협 조합장)도 과대포장방지 대책을 적극 추진하며 보조를 맞추고 있다. 농협은 더 나아가 농산물 포장개선 노력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생산자·유통업계·소비자 3자협력을 모색중이다.
여기에는 정부도 참여할 예정이다. 농협에 따르면 조만간 농림수산식품부·환경부, 농협중앙회·한국과수농협연합회·한국배연합회·한국사과연합회, 소비자시민모임·녹색소비자연대, 전국과실중도매인연합회,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이 한자리에 모여 농산물 포장개선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로 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민관이 합심해 불필요한 포장비용 축소로 농업경영비를 절감하고 소비자에게는 보다 저렴하고 안전한 고품질 농산물을 공급하며 궁극적으로는 과대포장에 따른 환경부담을 줄여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