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습니다.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방역에 기울였던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갔네요.”
전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을 그동안 잘 막아 내는 듯했던 충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구제역이 터지자 축산 농가들과 방역 당국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동시에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충남지역 전 축산 농가는 가축 질병의 대확산을 우려하며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가축 질병의 우려 속에서도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던 충남지역 축산 농가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 2010년 12월31일. 천안시 풍세면 풍서리 종오리 농가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것. 결국 이 농장 및 이 농장과 역학관계에 있는 3농가의 2만6,800여마리의 오리가 살처분됐다.
이 지역은 2004년과 2007년에 이어 벌써 세번째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탓에 농가들은 극도로 민감해져 있다.
발생 농장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탓에 1만1,000여마리의 오리를 모두 살처분한 이영노씨(56·풍세면 보성리)는 “올해 오리로 축종을 바꿔 이제 막 알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고병원성 AI가 터져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며 “철새가 원인이라면 농가에 철새를 쫓을 수 있는 공포총을 지원하는 등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지역을 관통하는 풍세천에는 겨울이면 가창오리 등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와 서식하고 있어 고병원성 AI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31일 찾은 발생 농장 인근에서는 철새들이 농장 위로 날아다니는 아찔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일에는 설상가상으로 구제역까지 터졌다.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젖소 농장에서 사육중이던 젖소 50마리 가운데 2마리에서 혀에 수포가 생기고 유두의 표피가 떨어져나가는 등의 구제역 의심 증세가 신고돼 정밀검사를 한 결과 양성으로 판정났다. 특히 이 농장은 경부고속도로와 불과 100여m 떨어져 있어 고속도로 통과 차량에 의한 급속한 확산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어 천안시 병천면 관성리 돼지 농장, 병천면 송정리 젖소·한우 농장과 보령시 천북면 사호리 소·돼지 농장에서의 의심 신고도 줄줄이 양성으로 판정이 나면서 구제역이 충남 전역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특히 사호리 농장은 전국 최대의 축산단지인 홍성군 및 한우 종자의 보고인 농협한우개량사업소 등과 근접해 있어 이 지역 축산 농가 및 관계기관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재형 대한양돈협회 홍성군지부장은 “구제역이 바로 인근 지역까지 발생하면서 농가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며 “홍성은 반경 500m 안에 많은 경우 7~8농가가 몰려 있는 등 농장이 밀집돼 있어 구제역이 발생할 경우 상상을 초월한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3일부터 다른 지역으로의 출하도 금지하는 등 차단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