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7%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특히 쌀을 제외한 자급률은 5% 남짓에 불과하다. 부족한 곡물은 수입으로 충당하는데, 한해 수입량만도 1,400만t에 달한다. 여기에 경지면적은 빠른 속도로 감소하면서 곡물의 수입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지만 곡물을 둘러싼 국제 환경은 불안정하게 흐르고 있다. 기상이변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바이오에너지 등 새로운 수요 증가로 수급은 악화되고, 이를 틈탄 투기자본은 곡물가격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이로 인해 축산업과 식품산업 등 전후방 관련 산업의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얼마나 올랐나=2008년 지구촌을 덮친 곡물가격 폭동은 ‘애그플레이션’이란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켰다. ‘곡물가격상승→식품가격인상→일반물가상승’의 도미노현상이 빚어지면서 필리핀과 이집트 등 몇몇 식량부족 국가에서는 폭동이 발생, 정권이 흔들리기도 했다.
2006년 1t당 1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던 옥수수 가격은 2008년 207달러로 두배나 뛰었다. 가축사료용 소비가 늘어난데다 선진국의 바이오에너지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후 옥수수 시세는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지난 2010년 6월 126달러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생산량 감소 전망이 나오면서 가격은 급등세를 탔고, 이달 5일 현재 244달러까지 치솟았다.
밀과 콩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 시세가 애그플레이션이 맹위를 떨치던 2008년보다 높게 형성된 것. 가격 측면에서는 애그플레이션 초기 단계에 진입한 셈이다.
◆왜 올랐나=기상이변으로 생산량이 준데다 올해 생산량 전망도 어둡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흑해연안국의 가뭄 피해가 심각하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밀 가격이 급등세로 돌아섰다. 이후 밀 주산지인 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가뭄, 호주 동부지역의 폭우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또 콩과 옥수수는 남미지역의 가뭄이 가격 인상을 촉발시켰다.
국제적인 투기자금도 가세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원유와 광물 투기 등에 감시를 강화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감시가 덜한 곡물자원에 투기자금이 몰리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인구 대국의 곡물수요 증가, 러시아 등의 곡물 금수조치 등도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전망은=미국 농무부(USDA)는 지난해 12월 내놓은 ‘국제곡물 수급전망 보고서’에서 2011년 곡물생산량을 2010년의 22.3억t보다 2%가량 줄어든 21.9억t으로 예측했다. 또 기말재고율이 2010년 22.4%에서 2011년엔 19.3%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기말재고율이 20%를 밑돌 경우 위험 수준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비관론은 ‘라니냐’란 물결을 타고 점점 확산되고 있다. 태평양 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라니냐가 올해 심각해질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 호주 기상청은 최근 “올해 발생하는 라니냐는 40여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며 “적어도 3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라니냐는 호주와 인도네시아는 물론 중남미지역에 가뭄과 한파를 일으킨다. 당장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콩·옥수수 수확에 비상이 걸렸다. 아르헨티나 농업 장관은 올해 옥수수 생산량이 USDA 예상량보다 20%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두 나라의 콩과 옥수수는 전 세계 수출량에서 각각 45%와 26%를 차지한다.
식품가격은 벌써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12월 전 세계 식품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FAO는 “지난해 12월 55개 식품가격 변동 추이를 분석해 산출한 세계 식품가격지수는 214.7로 이집트와 아이티에서 식량폭동이 빚어졌던 2008년 6월의 213.5보다 더 높았다”며 “옥수수·육류 등의 상승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압둘레자 압바시안 FAO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통신〉에 “여러 불확실성 때문에 곡물가격이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며 “만약 남미지역의 곡물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 가격은 훨씬 더 올라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