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불과 5일 앞둔 서울 가락시장 과일경매장은 미처 팔지 못한 사과·배 재고로 가득 차 있었다. 과일 판매가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면서 도매시장이 대목장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추운 날씨와 올 설에 과일값이 비싸다는 인식까지 겹치면서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대형 유통업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도매시장 주거래처인 재래시장과 소매상인들의 구매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도 도매시장의 명절 대목장이 썰렁해진 이유다.
판매 부진으로 재고량이 늘어나자 부담을 느낀 중도매인들이 추가 구매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과일 경락 가격은 곤두박질쳤다. 사과는 가락시장에서 대목장 초기 상품 5㎏ 한상자당 2만8,000원대에 경매되던 것이 불과 며칠 만에 2만2,000원대로 하락한 뒤 2만~2만2,000원을 오락가락하며 지난해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배는 한때 상품 7.5㎏ 한상자당 3만4,000원대까지 올랐지만 바로 하락세로 돌아섰고, 최근에는 2만6,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000~3,000원 높은 수준이지만 배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14%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낮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과일값이 떨어지자 산지에서는 출하량을 조절하고 나섰다. 가락시장에 하루 400t 안팎이 출하되던 사과는 연휴를 일주일 넘게 앞둔 시점부터 줄어들더니 하루 100t가량이 출하되고 있다. 이는 평상시 가락시장의 하루평균 반입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목장 가격이 기대치에 못 미치자 농가들이 설 이후에 출하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 이후 장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아 농가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지난해 이상기후 영향으로 사과·배 모두 경도가 낮아져 저장성이 예년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설 이후까지 품질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가격이 맞지 않아 출하를 포기한 대과 물량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돼 설 이후 과일장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다만 대목장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회복되고 재래시장 매기가 조금씩 살아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해 시장 상인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이영신 가락시장 중앙청과 상무는 “대목장 막바지에 매기가 살아날 가능성이 보인다”면서 “소폭이나마 가격 상승이 있을 수도 있는 만큼 농가들도 시세 흐름을 잘 살펴서 출하량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