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배추파동에서 촉발된 농산물 수급불안이 최근까지 이어지면서 농산물 수급불안과 유통구조 개선이 농정의 핫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70여일간 계속되고 있는 구제역으로 매몰처분된 소·돼지가 7일 현재 310만마리를 넘어섰고, 이 가운데 돼지가 300만마리를 차지하고 있어 채소류에 이어 축산물 수급불안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국제 곡물가격도 사상 최고 수준을 갈아 치우며 식량안보에 적색경보를 보내고 있어 대외 여건도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물가 인상 주범 된 농축산물=배추파동을 겪은 뒤 한동안 잠잠했던 배추값이 지난해 연말부터 다시 들썩이면서 채소값이 물가 인상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월 소비자 물가 인상률은 4.1%. 이미 정부가 정한 올해 물가 인상 억제 목표치 3%를 넘은 상황이다. 기재부는 이 같은 물가 급등의 원인으로 이상한파와 구제역 확산 등에 따른 채소류와 축산물 가격 인상을 꼽고 있다.
실제 배추 도매가격은 지난해 9월 하순 10㎏ 상품 기준 3만6,000원까지 치솟았다가 정부의 수급안정대책 등에 힘입어 11월 이후 9,000원 선으로 떨어졌으나 12월 1만원 선을 넘은 뒤 올 들어서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대파·시금치·오이·호박 등도 한파와 폭설로 수확작업이 원활치 못하거나 생육이 지연되면서 올 1월 가격 상승률이 20%대를 기록, 물가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구제역으로 인한 돼지고기값 상승도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린다며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공급 부족이 원인=배추와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의 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공급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올해 겨울배추 생산량은 27만6,000t으로 지난해의 31만6,000t에 견줘 15.5%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계속된 한파로 생산량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앞서 김장배추 생산량도 지난해보다 25%나 줄어 118만8,000t이 생산되는 데 그쳤다. 김장배추 생산량이 평년 수요량인 136만t에 비해 17만2,000t이나 적어 겨울배추를 앞당겨 소비한데다 겨울배추 생산량마저 줄어 공급 부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공급 부족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생산량이 줄어든 겨울배추를 계속 앞당겨 소비하게 돼 3월 이후에도 공급량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7일 현재 매몰처분된 돼지는 300만6,283마리로 전체 사육마릿수 988만1,000마리의 30.4%에 달했다. 여기에다 도축장 폐쇄 등으로 공급물량이 크게 줄어 1월 말 현재 돼지고기 지육 도매가격이 8,000원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1차 예방접종이 끝난 2월 초까지도 구제역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돼지고기 공급 부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공급 확대, 유통구조 개선이 대책=정부는 지난해 연말부터 정부 부처 합동으로 비상물가 대응체제를 구축하고 농축산물에 대해서는 공급량 확대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1월에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발표, 농산물 수급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 힘쓴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낸 수단은 외국산 수입이다. 배추는 중국산 2,000t을 긴급 수입, 중소규모 김치공장에 우선 공급하기로 하고 aT(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해 1차분 200t을 들여와 9일부터 판매하기로 했다. 돼지고기도 이달부터 오는 6월까지 할당관세를 적용, 현행 25%인 관세를 없앤 상태에서 냉동삼겹살 1만t과 육가공원료 5만t 등 6만t을 이달부터 들여오기로 했다. 또한 배추는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봄배추 재배면적을 농가들의 의향보다 20%쯤 더 심게 해 평년 면적보다 50%가량 늘린다는 계획이다. 곽범국 농식품부 식품유통정책관은 “겨울배추를 당겨서 먹을 경우 공급 애로가 발생할 수 있어 봄배추 생산 증대 노력을 통해 공급 애로를 끊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대책 먹힐까=지난 1월18일 농식품부가 발표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대책은 무·배추 경매가격이 일정 가격 이상으로 폭등할 경우 가격조정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하루 상승률을 제한하는 가격조정 긴급명령제를 도입하고 농협을 통한 무·배추 계약재배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 대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게 농업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산지는 물론 도매시장과 대형 유통업체 등이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이에 맞춘 생산과 유통체계 정비가 필요하단 얘기다.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물가 오름세를 꺾는 데는 유통구조 개선대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유통 개선대책에 집중하기보다 수입 증가 등 손쉬운 공급 확대대책을 남발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수입량을 계속 늘리는 등 단기대책에만 몰두할 경우 유통구조 개선대책은 후순위로 밀려나거나 효과를 거두지 못해 결국 악순환만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를 어떻게 풀어 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