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지진 여파가 당장은 절화류·파프리카 등 일부 농산물의 대일 수출에 차질을 빚게 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국산 농산물이 일본시장뿐만 아니라 일본과 경합했던 대만 등 수출시장에서 약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 일본 대지진 후유증 확산…먹을거리 비상=지난 11일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일본의 이와테현·미야기현·후쿠시마현·이바라키현 등 4개 현은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쌀 등 곡물을 비롯해 토마토·오이·양배추·시금치 등 채소류와 과실류를 많이 재배하는데, 채소류의 경우 일본 전체 생산량의 25~30%가 이들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 4개 현과 인접한 아오모리현은 대만 등 수출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아오모리 사과>의 주산지며, 아키타현·야마가타현 등도 농업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은 이들 지역의 각종 농업시설물을 파괴시켰고, 인근 지역에서도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성물질 유출 등으로 올해 농업 생산이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아사히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들은 26일자에서 “후쿠시마현 재해대책본부가 지역 내 모든 농가에 볍씨 파종을 비롯한 모든 농작물의 파종을 연기하도록 당부했다. 일본 정부도 이미 후쿠시마에서 생산되는 잎채소 등의 섭취를 제한할 것과 출하 중단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 한국 농산물 수출시장 약진 가능=농업 전문가들은 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이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앞으로 일본 내 농산물 수급상황이 악화되고, 수출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 경제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대지진에 의한 일본의 물류망 손실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단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대일본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보이나 일본의 농지 및 농작물 방사능 오염 우려와 계획정전으로 인한 시설원예·과수·저온저장고 피해 등으로 일본의 농산물 생산에 차질이 예상된다”며 “우리나라의 신선농산물·가공식품에 대한 수입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산 농산물이 앞으로 일본시장에 진출할 여지가 더욱 커졌으며, 수출시장에서도 일본산 농산물의 점유비가 줄어드는 만큼 한국산 농산물이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수출시장 진출 위해 난제 풀어야=하지만 국내 농산물이 일본시장을 비롯한 수출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성복 aT 수출지원팀 차장은 “일부 발빠른 일본 유통업체 바이어들이 벌써부터 한국 사정 파악에 나서고 있다”며 “채소류·과일류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까다로운 검역조건 등을 완화하는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내 농산물의 일본 수출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농업 전문가도 “일본 내에서 신선농산물의 수입 수요가 늘어날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부족한 수요를 한국산이 채워 줄 것이란 기대를 갖는 것은 금물”이라며 “우리와 경쟁을 벌이는 중국도 벌써 일본과 동남아지역 등 수출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정부와 학계·농업계는 방심하지 말고 힘을 합쳐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우리나라의 농산물 수출실적은 모두 59억달러어치로, 이 가운데 32%인 19억달러가량을 일본에서 얻어냈다. 일본도 지난해 농산물 수출액이 53억달러로 농산물 수출시장을 놓고 우리나라와 각축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