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피망농사 지은 죄밖에 없는데….”
3월29일 오후 경남 진주시 금산면의 피망 재배단지. 삼삼오오 모여든 농가들은 자고 나면 떨어지는 피망값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3,960㎡(1,200평) 규모로 피망을 재배하고 있는 정원호씨(63·가방리)는 “3월 초만 하더라도 한상자당 3만5,000원 이상은 받았는데, 지금은 2만원을 간신히 넘기고 있다”면서 “파프리카 수출이 잘 안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피망 농가에 이렇게 빨리 피해가 닥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웃의 피망 농가 성상기씨(59·장사리)는 “최근 서울 가락시장으로 400상자를 보냈는데, 시장 관계자가 파프리카 물량이 많이 들어와 시세가 많이 떨어졌다고 알려 와 크게 실망했다”면서 “정작 파프리카는 시세가 수출단가에 비해 나쁘지 않게 나오고 있어 피망 농가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기름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도 농가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겨울철 난방용으로 3만ℓ가량의 기름을 사용했다는 정씨는 “올해부터 면세유가 780원에서 1,000원대로 올라 걱정이 태산”이라며 “올겨울 기름값만 3,000만원 이상 들었는데, 출하되는 피망 한상자당 포장비 1,500원, 수송비 900원, 하역료 203원에 도매시장 상장수수료 4%를 제하고 나면 현재 거래되는 피망 시세로는 정말 남는 것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본 대지진 발생 이후 국내산 파프리카의 일부 수출 물량이 국내시장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국내 피망값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등 그 불똥이 피망에까지 확산되고 있어 피망 재배 농가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피망은 최근 서울 가락시장에서 10㎏ 상품 한상자당 2만5,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3월 초 3만5,000~4만원에 비하면 1만원 이상 하락한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같은 기간에 거래됐던 시세의 50%에 불과하다.
농가들은 일본 내 물류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국내산 파프리카 수출 물량이 시중에 더 풀릴 경우 피망값이 폭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피망 농가 정덕채씨(63·가방리)는 “일본 원전 방사능 유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파프리카 수출이 금방 회복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면서 “이럴 경우 피망값이 폭락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농가들이 수두룩하게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피망 농가들은 파프리카 수출 차질로 선의의 피해를 입고 있는 피망 농가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씨는 “수출용 파프리카의 일부 물량를 정부에서 수매해 폐기하거나 아니면 값 하락에 따른 피망 농가 지원 방안을 마련하든지 하루속히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성씨는 “파프리카 수출이 막혀 정작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피망 농가인데, 관심은 온통 파프리카 농가에 쏠려 있다”면서 “그동안 파프리카 수출 농가들은 물류지원비 등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았지만 피망 농가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며 피망 농가에 대한 정부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