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달 동안 시장에 출하해서 받은 돈보다 그동안 들인 기름값이 더 많습니다. 다른 비용까지 계산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충남 부여에서 피망 농사를 짓고 있는 이모씨는 요즘 한숨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는 생산비를 감당하려면 피망값도 올라야 하는 데 요즘 피망값은 거꾸로 끝 간 데 없이 추락하고 있어서다.
이씨는 1만900㎡(3,300평) 규모의 피망 농사를 짓고 있다. 하우스 내 기온을 평균 16~17℃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온풍기 2대와 온수보일러 2대를 설치해 가온을 한다. 유난히 추웠던 올겨울에는 하루 17시간 넘게 가온한 적도 있었고, 특히 지난해 12월부터 두달간은 하루 평균 15시간 가온을 했다. 이렇게 가온을 하면 하루 동안 사용하는 면세유 양은 800~1,000ℓ. 연초 면세유값이 96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씨가 하루 동안 기름값으로 사용한 돈만 77만~97만원이다. 두달간 기름값으로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쓴 것이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초에 정식을 한 뒤로 지금까지 사용한 기름 양이 7만ℓ 가까이 된다”면서 “기름값으로만 7,000만원가량 지출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피망값도 곤두박질쳤다. 이씨가 출하를 시작한 1월 말 서울 가락시장에서 10㎏ 상품 한상자당 3만원 안팎으로 예년의 80% 수준에서 거래되던 것이 4월 들어서는 1만3,000원대로 급락하면서 예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씨가 1월24일부터 4월14일까지 가락시장에 피망을 출하해 받은 돈은 총 5,249만3,000원. 말 그대로 기름값도 안 나오는 돈이다.
그나마 생산비가 기름값만 들어간다면 나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출하를 7월까지 계속하는 만큼 이후 매출액으로 비용을 감당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지난해 3만8,000포기를 정식하며 들어갔던 묘값 1,500만원과 하우스 지붕을 덮은 비닐값 1,500만원도 비용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다.
여기에다 출하가 끝날 때까지 들어갈 인건비도 있다. 이씨가 출하를 위해 고용하는 작업인원은 하루 7명. 선별작업을 할 여자 6명과 남자 1명이다. 이들 일당이 여자 4만원, 남자 9만원으로 하루 33만원, 한달 800만원에 달한다. 출하를 시작한 지 두달 반이 넘은 현재까지 인건비만 2,000만원이 들었다. 기름값 외에도 생산비가 5,000만원이나 들어간 셈이다.
하지만 이씨가 앞으로 벌어들일 돈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씨가 4월 들어 2주간 번 돈은 860만원가량이다. 지금의 시세가 이어진다면 한달 매출이 1,700만~1,800만원이 되는 셈이다. 7월 말까지 출하를 계속한다고 해도 앞으로 이씨가 벌 수 있는 돈은 4,300만~4,500만원 수준. 생산비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이다. 피망값이 오르지 않는 한 이씨가 올해 농사지어서 돈을 벌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씨는 “죽어라고 농사를 지어 봤자 남기는커녕 빚만 늘어 가는 상황인데, 정부는 물가 잡겠다고 농산물값 내릴 궁리만 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뿐”이라면서 “차라리 농사를 접고 말겠다는 농가가 한두군데가 아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