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쌀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정부의 잇따른 비축쌀 방출에도 쌀값은 잡히질 않은 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 올 1~3월 밥쌀용 수입쌀이 대거 풀리면서 저가쌀시장은 점점 혼탁해지는 양상이다.
◆비축쌀 얼마나 풀렸나=올 3월 이후 지금까지 시장에 흘러나온 정부비축쌀은 20만t을 넘는다. 이는 우리 국민의 20일치 소비량을 웃도는 양이다.
정부는 지난해 수확기 산물벼 형태로 매입한 공공비축용 쌀 5만t을 3월25일부터 미곡종합처리장(RPC)에 넘겼다. 이어 3월31일과 4월15일에는 2010년산 비축쌀 9만t을 시장에 풀었다. 또 4월15일부터는 실수요업체를 대상으로 수확한 지 2년이 다 돼 가는 2009년산 비축쌀을 40㎏ 벼 한포대당 4만4,080원을 받고 무제한 방출(정가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정부비축쌀 방출에도 산지 쌀값 오름세는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4월29일 단경기 쌀값 오름세를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비축쌀 중 2010년산 3만t과 2009년산 20만t을 공매한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2010년산 전량과 2009년산 3만t이 6일 공매에서 낙찰돼 조만간 시장에 쏟아질 예정이다. 이번 공매로 정부양곡 창고에 남은 2010년산은 군·관수용 등을 빼면 5만~7만t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6일 공매에서는 2010년산이 40㎏ 벼 한포대당 평균 5만1,325원의 고가에 전량 낙찰됐다.
4월15일 평균 낙찰가격 5만880원에 견줘 445원 높게 형성된 것. 반면 2009년산 평균 낙찰가격은 3만6,875원, 최저 낙찰가격은 3만6,000원에 불과했다. 4만4,080원의 정가판매를 통해 사들인 실수요업체로선 불과 며칠 사이 한포대당 8,000원가량의 손해를 본 셈이다.
◆저가쌀시장 혼탁=산지 쌀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사이 수입쌀은 저가미시장을 급속히 파고들고 있다. 2009년 도입분 밥쌀용 미국·중국쌀 판매량은 2010년 2·4분기 1,343t, 3·4분기 6,234t, 4·4분기 1만791t에 그쳤다. 하지만 올 1·4분기에는 2만3,600t이나 팔렸다. 낙찰 가격도 중국쌀 기준 20㎏ 한포대가 판매 초기인 2010년 4월 국내산 도매가격의 80%인 2만6,000원에 형성됐지만, 올 3월에는 국내산의 47%인 1만7,000원으로 뚝 떨어졌다. 게다가 중국쌀의 도입원가는 1등급이 2만3,800원이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방출된 것.
국내산과 수입쌀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둔갑판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올 1월부터 4월 중순까지 수입쌀을 국내산으로 속여 팔다 적발된 물량은 1,190t(6건)에 달한다.
게다가 국내 유수 인터넷쇼핑몰에는 국내산과 수입쌀을 2대 8로 섞은 뒤 포장지에는 이를 표시하면서 상표는 마치 국내산인 것처럼 홍보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서울 양재동 양곡도매시장의 한 관계자는 “요즘 대형식당에서 ‘중국산과 국내산을 섞어 얼마짜리 쌀을 납품해 달라’고 요구한다”며 “중국쌀을 많이 섞으면 2만원대 쌀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입쌀 공급 늘려 쌀값 잡는다?=5일 기준 산지 쌀값은 80㎏ 한가마에 15만4,448원으로 열흘 전의 15만3,288원에 견줘 1,160원 올랐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9년산 추가 공매(19일) 및 수입쌀 공급 확대(공매 예정가 인하)를 통해 쌀값 안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비축량이 바닥을 보이는 2010년산은 단경기(7∼8월)까지는 공매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올가을까지 2010년산이 얼마나 부족한가에 대해 정부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수확기 당시 정부가 산출한 2010년산 전체 수요량은 426만t이며, 통계청이 발표한 수확량은 429만5,000t이다. 수치상으론 3만5,000t이 남아야 정상이다. 그렇지만 산지 쌀값 상승세는 정부 비축쌀 20만t 방출에도 꺾이지 않고 있다.
양곡업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정부가 비축쌀을 공매하면서 ‘수확기까지 얼마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쌀을 푼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올해는 이렇다할 설명도 없이 공매에 나서고 있다”면서 “산지에선 정부 공매가 계속될수록 ‘물량 부족이 심각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건호 농식품부 식량정책과 서기관은 “정부 비축쌀을 20만t이나 방출했는데도 쌀값이 오른다는 것은 양곡유통업계가 시중 공급량을 (수요량에 견줘)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것 아니겠냐”며 “올 수확기 전까지 10만t정도 부족할 것으로 판단되며, 부족분은 2009년산 추가 공매 및 수입쌀 공급을 통해 채워 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