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비축쌀을 잇따라 방출하면서 ‘정부 재고는 충분한가’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쌀 생산량이 올해 예상 수요량을 초과한 상황에서 정부 재고는 오히려 40% 가까이 급감, 정부통계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10월 말 예상 재고 88만t…2010년산은 ‘0’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기말(10월 말) 정부쌀 재고량은 143만4,000t으로 적정 재고 72만t의 두배에 달했다. 기말 재고량에는 그해 수확량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 가을 공공비축용으로 34만t을 매입해 비축했고, 쌀값 안정을 위해 9만7,000t을 추가로 사들였다. 정부는 올 초까지만 해도 주정용 공급과 같은 특별대책을 통해 기말 재고량을 135만7,000t으로 낮춘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3월부터다. 재고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시중 쌀값이 급등하자 6월 말까지 2009년산 묵은쌀과 2010년산 햅쌀 40만t을 방출했다. 또 밥쌀용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2006·2007년산 묵은쌀과 수입쌀 재고분 10만t을 주정용·신소재용·가공용으로 특별처분했다. 농식품부는 올 10월 말까지 쌀값 안정용으로 10만t, 특별처분으로 18만t을 더 방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기말 재고는 88만3,000t으로 1년 전보다 55만1,000t(38.4%) 감소하게 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기말 예상 재고는 적정량 72만t에 견줘 16만t 이상 과잉 수준”이라며 “올해는 과잉재고에서 적정재고로 진입하는 단계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재고 가운데 밥쌀로 쓸 수 있는 쌀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햅쌀을 우선적으로 방출하면서 10월 말 이면 정부 곳간에는 2010년산이 한톨도 남지 않게 된다. 88만3,000t의 대부분은 2009년산(52만4,000t)과 2008년산(19만9,000t) 묵은쌀이며, 주로 가공용으로 쓰일 수입쌀도 16만t이 포함돼 있다<그래픽 참조>.
양곡업계는 올해 작황이 지난해 수준에 그친다면 내년 국민 식탁에 3년 묵은 쌀이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고 내심 걱정하고 있다. 올해 벼 재배면적은 85만5,000㏊로 작년보다 4.1%(3만6,000㏊) 감소했다. 또 불량볍씨 파동과 이상기온으로 풍작에 대한 기대가 어렵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농식품부는 올해 풍작과 흉작 두가지 상황을 고려한 ‘수확기 쌀 수급안정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2011 양곡연도 예상 ‘감모·기타’ 84만t…생산량의 20%
지난해 수확기 정부는 민간 수요보다 더 생산된 물량을 격리했다. 당시엔 수요보다 생산량이 3만5,000t 정도 많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올해 정부가 밥쌀용으로 시중에 푼 물량은 계획량 10만t을 포함해 50만t에 이른다. 달리 말하면, 시중 부족량이 50만t에 달한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민간부분을 포함한 기말 재고는 대북지원과 같은 외생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2010년 150만t에서 2011년에는 93만t으로 1년 새 57만t이나 줄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정부 고위 관계자는 “도정수율과 수요량 예측 부분에서 당초 전망치와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도정수율이 72%인 반면 2010년산은 70%에 그치면서 실제 쌀 생산량이 통계청 발표치보다 12만t 적고, 밥쌀용 수입쌀이 예상보다 5만%가량 적게 풀렸다는 것이다. 또 올해 1인당 쌀 소비량이 당초 전망치 70㎏보다 많은 71.6㎏으로 8만t이 더 소비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재고를 감안하면 지난해 쌀 생산량이 통계청 조사보다 적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그렇다고 지금 와서 생산량 통계를 바꿀 수도 없지 않으냐”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통계치와 실생산량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정부가 작성하는 양곡년도(11월에서 이듬해 10월까지) 쌀 수급표는 공급량과 수요량으로 나뉜다. 수요량은 다시 식량 ▲가공용 ▲대북지원 ▲종자 ▲수출 ▲감모·기타로 구성된다. 감모란 수확 이후 운송이나 보관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량 감소나 손실을 말한다. 따라서 감모율은 수확 후 관리기술의 발달로 점차 하락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표 참조>. 감모와 같은 항목의 ‘기타’ 때문이다. 정부는 공급량과 재고량이 확정된 후 그 차이를 ‘감모·기타’로 정의해 사용한다. 따라서 ‘감모·기타’에는 감모 자체뿐만 아니라 통계 불일치가 내포돼 있다.
정부는 올해 ‘감모·기타’를 84만t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생산량의 19.6%, 우리 국민의 밥쌀용 소비량 3개월치(90만t)에 버금가는 양이다.
박동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감모·기타’는 전년도 생산량의 8%를 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며 “감모보다 기타가 우선된다면 정부통계에 대한 불신 및 정책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